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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은 정치칼럼

정치의 계절에 홍익인간·재세이화의 단군 건국이념이 절실한 이유는

NSP통신, NEWS, 2023-10-05 10:17 KR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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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통신-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미국 캐롤라인대학 정치철학 박사)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미국 캐롤라인대학 정치철학 박사)

(서울=NSP통신) = 오늘은 부정과 부패 한 점 없이 청렴한 가을 날씨가 예상 되겠습니다. 이 소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장 듣고 싶은 정치 기상예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이곳저곳에서 각종 여론조사 데이터를 들고나와 자기 논리를 변호하기 바쁘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말은 ‘부동층’이 많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는 ‘중도층’ 공략이 핵심 관건이라고들 떠들어 댄다. 또 한쪽에서는 일반 여론조사 데이터는 믿을 수 없고 자기 지지층 중 ‘고관여층’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다고 자기 위안성 발언을 반복한다.

하지만 모두 과학적 근거가 없는 오류이거나,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의도된 혼란 또는 사업적 계산이 엿보인다. 그들이 ‘중도층’, ‘고관여층’을 이야기하면서 ‘중간층’, ‘무당층’, ‘관망층 또는 유보층’, ‘적극 지지층’, ‘실용’, ‘신세대’ 등의 단어들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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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으면서 가장 위험스러운 개념인 ‘중도’에 대해 알아보자.

이 단어에 대해 현재 가장 많이 차용하고 있는 해석은 ‘보수와 진보의 한가운데 지점’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한가운데 있는 이념이란 지점이 존재 가능한가?

이념적으로 ‘보수’는 최소한의 개혁으로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 시키고 현재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정치이념으로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의 존중, 최소한의 국가개입주의에 기반하고, ‘진보’는 기존의 사상이나 사회질서 및 제도, 정치와 경제의 체제를 개혁하여 변화를 시도하는 정치이념을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좌파’는 정치적으로 급진적·혁신적 정파, ‘우파’는 정치적으로 점진적·보수적 정파를 뜻하고 이 말이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 의장석에서 볼 때 오른쪽(우파)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좌파)가 앉은 것을 그 기원으로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 좌파와 우파는 봉건적 정치제도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좌우가 구분된 것이다. 즉 좌파=진보, 우파=보수의 논리는 일견 타당할 수 있지만 진보=역사적 발전, 보수=역사적 퇴행의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보수, 진보 또는 좌파, 우파에 관한 논쟁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체제의 정체성 즉 ‘민주공화국’의 토대에서 판단해야 한다. 즉 체제를 부정하는 폭력혁명을 통한 체제변화나 무정부주의, 파시즘적 국가주의를 추종하는 그런 극단적인 이념과 정치세력의 경우를 제외하고 현재의 체제를 유지, 보수하느냐, 변화, 개혁을 추구하느냐 측면에서 구분, 정리해야 맞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과연 대한민국에 ‘중도’란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언론에서 떠드는 ‘중도’층이란, ‘보수’ 또는 ‘진보’ 중 어느 한쪽의 지지를 유보하고 잠정적으로 ‘중간’ 지대에 서 있는 층이라고 본다. 필자가 보기에 이 중간층은 두 개의 부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자신은 분명하게 ‘보수’ 또는 ‘진보’ 이념으로 무장되어 ‘이념의 진영’ 한쪽에 존재한다고 확신하지만 현재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소위 보수 또는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지 않아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부류이고, 또 하나는 ‘보수’나 ‘진보’ 이념에 경도되어 있지 않은 ‘정치적 실용주의’에 서 있는 ‘경계인’으로써 현재 존재하는 정당으로부터의 기대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 여론조사 상으로 유보층 또는 무당층으로 기록되고 있는 부류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각 정당이 그들이 원하는 이념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줄 때만이 유보를 철회할 수 있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념의 폭과 깊이를 과감하게 혁신해야만 그들을 인입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념의 진영에 몸을 깊이 담고 있는 각 정당이 어느 한쪽 방향으로 자신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으리라 본다.

여기에 더해 IT기술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글로벌한 세계에서 그리고 MZ세대를 넘어 잘파세대(Z+alpha, 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세대를 의미하는 Z세대와 2010년대 초반~2020년대 중반에 출생한 세대를 의미하는 합성어)로 대변되고 있는 이념 지형과 문화 지형의 혁신적인 변화에 따른 복잡다단한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정당의 모습이란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과거처럼 보수나 진보의 단일대오를 무색하게 하는 복잡성이나 실용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새로운 정치세력, 현대의 정치적 실용주의자’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들은 흔히 여론조사에서 통칭해서 묶어놓은 ‘20-30대’가 아니다. 실용주의적 신세대로 구세대들과 삶의 기준이 다르고 구세대들이 규정해 놓은 모든 것들에 대한 정의와 해석이 다르다. 그러하기에 그들을 만족시킬만한 정당이 없어 모든 여론조사에 ‘무당층’으로 분류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념의 진영 한쪽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현재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지지 유보’를 선언한 ‘무응답’층이 향후에도 현재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무당층’과 구분되지 않고 함께 묶여 진다는 것이다. 이 정치적 중간지대에 서 있는 ‘지지 유보층’과 ‘새로운 실용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정당의 변화방향은 명백하게 달라야 한다.

각 정당의 지지 유보층에 대한 인입 전략 수립에 있어 핵심 대상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이탈한 보수 지지연합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명 당 대표가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소수파로 존재하는 진보지지 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비 명계 연합이다.

문제는 이들 모두 소위 중간층 인입 전략의 수립 근거로 ‘정치적 고관여층 지지율’을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다음 한국갤럽의 9월 8일과 9월 22일 공개한 정치 여론조사 데이터다.

“한국갤럽이 지난 9월 8일 공개한 여론조사(9월 5~7일 조사, 전화 조사원 인터뷰,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에서는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평가(잘하고 있다.) 33%, 부정 평가(잘못하고 있다.) 58%로 집계되었지만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많이 있다’고 응답한 ‘정치 고관여층’의 경우, 긍정 평가 45%(12%포인트 증가), 부정 평가 51%(7% 포인트 감소)를 나타냈고, 지난 9월 22일 공개한 정치 여론조사(9월 19~21일 조사, 전화 조사원 인터뷰,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에서는 긍정 평가 32%, 부정 평가 59%로 집계되었지만 ‘정치 고관여층’으로 좁혀서 보면 긍정 42%(10% 포인트 증가), 부정 56%(3% 포인트 감소)로 바뀐다.”

그런데 이 한국갤럽조사의 다른 숨은 데이터는 ‘정치 고관여층’에서의 대통령 지지율은 45%대가 되지만 전체 응답자 중에서는 약 17%(170여명) 정도에 불과하고 약 40여%에 해당되는 ‘정치 중관 여층’에서의 대통령 지지율은 32%(400여명) 즉 전체 응답자(1,000명)의 지지율과 비슷 하다는데 있다.

여론조사에 있어 자신의 눈에만 익숙한 데이터 조작의 함정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정당이 ‘정치 고관여층’을 ‘중도층’으로 보고 선거전략을 수립할 때 생기는 함정은 각각의 이념진영 한쪽에 치우쳐 있는 극단의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 그룹(예, 개딸과 극우그룹)에 휘둘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칫 ‘지지 유보층’과 ‘새로운 실용적 정치세력’ 모두를 잃는 그래서 회생마저 불가능해지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선거에 임하는 정당은 ‘정치적 고관여층’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지지 유보층’을 향할 것인지 ‘새로운 실용적 정치세력’을 향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과거의 정당’으로 잊혀질 것인지 ‘미래의 정당’으로 거듭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지 유보층’을 선택한다고 ‘새로운 실용적 정치세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지 유보층’을 기반으로 ‘새로운 실용적 정치세력’을 포용하는 전략적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정치적 중관 여층과 저관 여층’에 해당되는 잘파 세대의 실용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다. 소통과 협치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 여기에 자유로운 창의가 난무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즉, 혁신이 가능한 정당인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에 맘에 들지 않는 정당에게는 절대 표를 던지지 않는 세대다. 현재의 무제는 이 실용주의자들의 마음에 드는 아니 마음에 들 가능성이 있는 정당의 존재 여부에 대한 태도 즉 실용적 선택의 문제다.

그 때문에 이들을 인입 하고자 하는 정당은 이 실용주의자들의 기대치에 맞는 과감한 정책의 변화와 그에 맞는 인물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역시 정책과 공약 그리고 인물을 선택하는 공천의 문제다. 그 다음이 선거운동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라는 것을 우리는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스타 등극’ 과정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예전의 대중음악계는 영국과 미국의 팝을 따라갔지만 ‘방탄소년단’의 등장에서부터는 그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그들이 ‘한국’으로 따라옴에 따라 국내에서는 음악시장을 넘어서 다양한 시장이 새롭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어가는 것이다.

혈연이 이미 무너졌고 이러한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의식의 변화과정에 정당도 동참해야 한다. 더불어 이참에 그 지긋지긋한 이념 논쟁도 끝내고 진영 논리도 박멸해야 한다. 새로운 도덕과 윤리의식이 자리잡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의 장이 마련되고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갈 잘파 세대의 안정적 정치 공간도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그만큼 이번 10월의 강서구청장 선거와 다가오는 2024년 4월 총선이 절체절명의 정치적 이벤트로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올해는 단기 4356년이다.

‘널리 인간을 도우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세상의 이치로 조화롭게 하라’는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건국이념으로 하는 단군 세상 즉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開天節)이 지났다.

하늘이 열린 날처럼 정의와 공정, 상식이 무너진 하루의 일상을 힘겹게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정치가 민주주의를 능멸하고, 경제가 민생을 피폐 시키고, 사회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역린(逆鱗)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신세대가 바라는 지속 가능한 사회란, 다름이 인정되고 차별 없는 다양성이 공존 가능하고, 공정한 정의가 실현 가능하고, 전쟁 위협 없는 평화가 일상이 되고, 창의에 기반한 자유가 상식이 되고, 미래세대의 희망이 존중되는 그런 사회를 말함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국민을 두려워하고 사회가 사람을 우선할 때, 하늘은 다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 요즘, 단군의 건국이념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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