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DIP통신] 임창섭 기자 =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간절곶.
거인나라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우체통을 둘러보고 해안도로를 따라 부산방향으로 내려가다 우연히 ‘여백’이라는 찻집이 눈에 들어왔다.
잘 띄지 않아 단골아니면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아련한 그리움을 만났다.
마치 길을 걷다 코흘리게 적 초등학교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반가움.
그곳에는 ‘사계절 꽃차’와 ‘꽃식혜’ 그리고 시인과 목사님 클라리넷과 피아노 기타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가져온 악기로 화음을 이루며 즐거워하고 시 한줄 들어간 화지를 벽에 붙이며 함박웃음을 나눌 수 있는 곳 ‘여백’.
오랜 외국에서의 긴여정을 끝내고 돌아와 박영애씨(50)가 꾸민 화차(花茶) 다원(茶園)이다.
개량 한복을 걸치고 머리에는 수건같은 것을 쓰고 있는 여주인의 모습은 화사함보다는 들꽃같은 소박함과 세월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 했다.
간절곶 찻집이 모여있는 곳에서 유일하게 전통찻집을 운영하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화차를 내놓은 것이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아예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마당이 있고 아뜨리에를 겸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단다.
아기자기한 소품중에는 주인장이 직접 제작한 압화(壓花.투명한 물질속에 야생 꽃을 넣어 만든 작품)도 있고 직접 그린 유화, 옛날 초등학교 교실을 연상케하는 책 걸상, 그리고 수백여종에 달하는 갖가지 꽃차들이 가득 어우러져 있었다.
들로 산으로 다니며 직접 들꽃들을 채집해 만든 차종류만도 봄에는 매화 제비꽃 벗꽃, 여름에는 태래빚꽃 수국 패랭이꽃, 가을에는 옥장화 고만이꽃 개구릿대꽃 등 백여가지가 넘는다.
세종류의 화차가 담긴 한 셋트의 가격은 3만~4만원.
채집과 제작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 정성을 감안하면 그리 비싸보이지는 않았다.
창밖에는 빨간 예쁜 등대가 풍경의 한켠을 차지하고 벽에는 가슴을 울리는 시들이 빼곡히 걸려있는 ‘여백’.
주전자와 찻잔 속에는 마치 그림처럼 벚꽃이 어우러지고 파란 꽃잎이 띄워진 호박식혜의 맛은 끝에 씹히는 꽃잎이 절묘한 내음새를 선사한다.
운 좋으면 ‘여백’을 사랑해 찾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과 그 음악을 함께하며 즐거워 하는 시인, 목사님도 만날 수도 있다.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어느날 여유있는 휴일 오후.
그곳에서는 그날 법률사무소에 종사하면서 시를 쓰는 최국태시인과 기타를 연주하는 최무성씨, 그 선율에 맞춰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학원장 장연경씨 그리고 목사님 가족들의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그곳 ‘여백’에는 사인을 곁들여 받은 최시인의 시집 한 싯귀절처럼 “정리되지 않은 메모지에 온종일 제목만 앉아” 있어도 느긋한 여유로움이 있었다. 문의 010-9023-8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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