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P통신) =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자동차 번호판이 정부가 주최한 경매에서 1420만 달러(한화 약 134억원)에 낙찰됐다. 16일 밤 UAE 수도 아부다비의 최고급 에미레이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자동차 번호판 경매에서 두바이의 부동산 사업가 사이드 알-쿠리(25)씨가 ‘1’번 번호판을 5220만 디르함(1420만 달러)에 사들였다.
◆번호판 하나가 경차 2150대 가격
자동차 번호판 가격이 무려 1420만 달러(한화 약 134억원). 국산 경차인 마티즈(시티 수동 기준·623만원)를 2150대나 살 수 있는 돈이다. 이 낙찰가는 종전 기네스북 기록이었던 2520만 디르함(686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이번 경매에서는 ‘1’번 번호판 이외에 ‘51’ ‘96’ ‘100’ ‘121’ 등 90개 번호판이 매물로 나와 총 낙찰가가 8900만 디르함(2423만 달러)에 달했다니 특정한 자동차 번호판에 대한 인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두바이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으로 차주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적은 자릿수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면 현지 귀족에 가까운 ‘특권층’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번호는 1자리에서 5자리까지 있는데 1~2자리는 로열패밀리, 3자리는 두바이 귀족, 4자리는 두바이 토착민, 5자리는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최근엔 경매를 통해 원하는 번호판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두바이의 번호판 경매는 과열 양상을 빚어 한 때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빚을 내서 참가하지 말라고 권고할 정도였다.
◆내 맘대로 만든다―미국
연간 1600만 대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개인이 원하는 숫자나 알파벳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각 주마다 법령 등 제도가 달라 디자인도 제각각인 것이 특징이지만, 7개의 숫자나 7개의 알파벳을 사용해야 한다. 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자동차 번호판을 사용할 수 있다니 역시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스러운(?) 발상이다.
다만 커스텀 플레이트(Custom Plate)로 불리는 개인 맞춤 번호판을 사용하려면, 4만원 수준인 연간 도로 세금을 7만~8만원 정도로 내야 한다.
인기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오빠인 제임스 헤이븐의 경우 자신의 SUV 차량에 ‘SHHILOH’라는 번호판을 사용하고 있는데, ‘실로’는 졸리의 친딸 이름이다.
뉴욕주의 경우 개인 맞춤 번호판은 자신이 좋아하는 숫자나 글자로 등록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이미 사용하고 있으면 등록이 불가능하다. 돈으로 사거나 경매로 낙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번호가 철수돼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등록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8번을 좋아하는 중국인
13억 인구의 중국에서도 자동차 번호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차량 등록지와 차량 용도, 개별 차량 번호 등 자동차 번호가 세분화돼 있어서 번호만 제대로 알면 차에 누가 탔는지 알 수 있다.
상하이(上海)와 선전(深川) 등 일부 도시에서는 경매를 통해 번호판을 사기도 한다. 보통 4만~5만 위안(한화 약 500만~625만원)에 경매가가 형성되지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8’번이나 ‘9’번이 많으면 가격은 치솟는다.
실제로 지난달 중국 주하이(珠海)에서 열린 자동차 번호판 경매에서 ‘粤C88888’ ‘粤C99999’(粤는 광둥성을 뜻하는 글자) 등의 번호판이 나와 각각 80만 위안(한화 약 1억530만원)에 낙찰됐다. 숫자 ‘8’은 ‘돈을 벌다’를 뜻하는 ‘파’(發)와 발음이 비슷하고, ‘9’는 ‘길다, 오래다’의 뜻을 의미하는 ‘주’(久)와 발음이 같아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8’번이 많은 차량 번호판을 사용하는 개인은 대부분 부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2005년 자동차 번호판 경매에서는 ‘粤C55555’가 81만 위안(한화 약 1억660만원)에 팔린 기록도 있는데, 숫자 ‘5’는 중국에서 가장 신비로운 숫자로 여겨진다.
반면 중국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시는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승용차 번호판에 ‘4’자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스(死)’와 발음이 같아 불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를 반영한 독특한 정책이지만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대두되고 있다.
◆자동차 번호판은 프랑스에서 시작
‘자동차의 신분증’이라고 불리는 번호판은 1893년 세계 최초로 프랑스에서 의무적으로 적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파리 경찰이 시속 30km 이상을 주행하는 자동차에 한해 차주의 이름과 주소, 등록번호를 기재한 철판을 차체 앞 왼쪽에 부착하도록 한 것이 기원이다. 프랑스는 1901년 9월 자동차 번호판 법령을 공식적으로 제정해 곧바로 시행했다.
영국에서는 1903년 자동차 번호판 관련 법규가 마련되면서 얼 러셀이라는 사람이 ‘A1’이라는 첫 번호판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등록이 시작되기 전날 밤을 새우며 기다린 끝에 첫 번호판의 주인이 됐다. 이 번호판은 1973년 자선 경매에서 1만4000파운드(한화 약 1억6000만원)에 판매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14년 처음으로 자동차 번호판이 도입됐는데, 이는 당시 오리이자동차상회라는 승합차 회사가 전국 9개 노선을 허가받아 자동차 영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조선닷컴 카리뷰 하영선 기자 ysha@medi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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