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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군·이분선 어르신, 결혼 생활 61년 속에 ‘곰삭은 사랑 이야기’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20-11-01 15:39 KRD2
#경주시 #김태군·이분선 어르신 #결혼 나이 61년 속에 곰삭은 사랑

김태군 할아버지, “61년을 내 곁을 지켜주어 고맙고 또 고맙소.”... 이분선 할머니 “살아 내 곁에 있어 주어 감사하오. 당신 덕에 한 평생 잘 살았소.”

NSP통신-김태군 할아버지 모습. (권민수 기자)
김태군 할아버지 모습. (권민수 기자)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군위군의 한 사내가 봇짐을 메고 아내를 뒤로 한 채 모진 겨울 삭풍을 뚫고 경주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흰색 바지저고리를 걸친 그의 헐벗은 모습은 조선의 평범한 농부의 모습. 걷다 돌아선 그의 두 눈은 황량한 벌판을 홀로 버티고 선 맹수의 눈으로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회색빛 겨울 하늘을 닮은 그의 얼굴에 처연한 한일자의 미소가 비틀린다. “너희 부부는 고향을 떠나야 아들을 볼 수 있다. 조상님께 떳떳하기 위해 떠나거라” 고향 어르신의 말씀.

그의 눈에는 서리 빛 눈물이 맺히고 꽉 다문 입술엔 설움과 회한의 핏빛이 물들어 간다. 짚신에 헝겊을 동여맨 그의 발길이 차갑게 돌아선다. 그때는 그러했다. 죽은 자가 산자를 지배하든 시절. 가슴이 된서리에 맞은 것처럼 얼어 터져 부서져도. 그 시절의 산자는 그리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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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군. 1933년 경주 북 성건동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을 품고 태어난 집안의 장손이다. 그에게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남동생도 1명 있었다. 어찌 보면 신통한 고향의 어르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한을 풀고 뼈만 남은 육신을 미련 없이 벗어 버리고 조상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의 유년기는 일제강점기. 그의 청년시절은 6.25 전쟁. 그의 장년기는 5.16 군사정변. 그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가장 참혹한 시절을 겪으며 살아남은 이 시대 모든 사내들의 아버지요, 할아버지이다.

한편의 소설책을 접어버리고 시작된 그의 청년기. “콰-광, 쾅. 탕 다다 탕...” 그의 24연발 BAR 반 자동기관총의 연발 총성도 전장의 난폭한 굉음이 희뿌연 연기와 먼지 속에 잠식될 때 그의 정신도 아득하게 멈췄다.

NSP통신-김태군 할아버지가 아내의 생일에 선물한 감사패를 건네며 다시 한번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고 있다. (권민수 기자)
김태군 할아버지가 아내의 생일에 선물한 감사패를 건네며 다시 한번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고 있다. (권민수 기자)

그는 국가유공자이다. 살기위해, 전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총으로 붉은 총알을 토해낼 때, 그의 오른쪽 대퇴부에도 붉은 피가 솟아났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제대한 그의 현실은 상처 입은 육신보다 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왜놈보다, 6.25 전쟁의 포탄보다 더 무서운 배고픔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했다. 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한 그를 위로하고 도운 사람들은 그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었다. 그때 그는 없는 이의 한과 서러움. 배고픔의 무서움을 알았다.

그를 똑바로 서게 받쳐주든 지팡이가 힘겨울 때. 그는 자신의 손을 잡아줄 평생의 동반자를 만난다. 26살의 그의 선택이다. “집안사람들과 어둑한 초롱불 아래에서 서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는 만났다. 돈과 취직을 시켜준다는 다른 혼처가 3곳이 더 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선택했다”

그녀 이분선. 그녀는 22세에 시집에 와, 다음날 시집 마당에서 혼인식을 올리며 남편의 얼굴을 처음 재대로 보고 다음 날부터 김 씨 집안의 사람이 됐다.

김 씨 집안의 귀신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그 남자. 내 남편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직감했다. 마음이 서자 그녀는 남편을 돕기 위해 경주의 장터를 돌며 행상을 시작한다.

결혼 한지 1년 후 큰아들이 태어났다. 갓난아이를 업고 안강 장터까지 걸어가 보따리를 풀 때. 보자기에 떨어지는 눈물을 그녀는 남의 눈물인 냥 왜면하며 물건을 팔았다. 잦아진 목소리는 악이 되고 한이 되어 갔지만 치근대는 아들의 얼굴을 본 그녀는 시장에 나온 배추이파리처럼 푸르게 미소 지었다.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해질녘 무렵 다 달은 검정 고무신의 주인이 낡은 부엌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어깨에는 하드(아이스크림) 통이 대롱이고 있다. 파김치가 된 그의 아내가 아이를 업고 연탄불에 생선 두 마리를 굽고 있다.

연기가 메워서인지, 서러워서 인지 모를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맺혀있다. 그는 알고 있다. 한 마리는 시어머니 몫. 한 마리는 자신의 밥상머리에 올려 지리라는 것을.

먹지 못했다. 미안하고 고마운 그녀의 얼굴을 보며. 집을 뛰쳐나온 그는 모진 마음을 먹고 선배와 주위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한다.

NSP통신-이분선 할머니가 남편의 옆을 지키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권민수 기자)
이분선 할머니가 남편의 옆을 지키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권민수 기자)

희생만 강요한 아픔의 시대는 그래도 살 구멍을 하나 정도는 남겨 놓았다. 군사보호대상자로 인정받아 체신부에 입사하며 건천 우체국으로 발령을 받는다.

경주 건천으로 부푼 꿈을 품고 이사 간 집은 아궁이에 불을 넣으면 방안이 연기로 가득하고 비가 오면 이부자리가 젖고 겨울바람이 들어 마당에 자는 것과 같은 집을 7번 이사 끝에 거주의 기본을 갖춘 집을 찾는다.

두 부부는 그렇게 두 손을 꼭 잡고 우체국 생활과 가계를 꾸리며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 61년의 결혼생활 속에 4남 1녀를 둔다. 지금은 황성동에 거주하며 남 못지않게 살고 있다.

61년. 두 부부의 결혼 나이다. 어쩌면 이 나이는 다른 사람의 한평생과도 같은 무게를 가진다. 이 세월을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모진 세파를 뚫고 한 자리에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내의 생일에 감사패를 손수 제작해 진심 어린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고.

“104세까지 장수하신 어머니와 8명의 대 식구의 뒷바라지를 하며 평생을 나와 함께 해준 내 아내 ‘이분선’, 오직 내 인생의 하나뿐인 그녀. 고맙고 또 고맙고. 사랑합니다. 죽어 다시 태어나도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라며 아내를 바라보며 우는 듯 웃는 듯한 90세를 바라보는 김태군 할아버지의 고백이다.

그의 단 하나뿐인 아내 이분선 할머니는 “살아 내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맙소. 시대가 그러하여 아픔도 많았지만, 당신으로 인해 한 평생 잘살았어요.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 주세요. 한평생 아껴주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인다.

할아버지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의 지팡이가 한발 앞선다. 그 뒤를 오른발이 따른다. 그리고 왼발에 맞추어 할머니의 오른발이 따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팔짱을 낀 모습으로 두 부부는 오늘도 걷고 있다. 두 손을 꼭 잡고.

사랑 고백과도 같은, 작별과도 같은 서로를 향한 노부부의 고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라고 두 분 어르신이 물음을 던지고 있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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