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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중국에서 성공한 스타기업가 10인

NSP통신, 임창섭 기자, 2011-11-13 16:50 KRD2
#중국 #성공 #기업가 #스타 #10년

마윈·차오더왕·쭝칭허우

[부산=NSP통신] 임창섭 기자 = 최근 LG경제연구원이 발간한 ‘LG료망중국(China Insight) 11월호’(제37호)에 중국과 관련해 매우 눈길을 끄는 내용이 실렸다.

중국의 유명 경제주간지 ‘신차이푸’의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호를 다뤘는데 이 특집호에는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성공한 4개 회사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10인의 기업가들이 집중 조명돼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로 꼽힌 4개사는 레이스조명, 신둥팡, 징둥상청, 텅쉰 등이었으며 기업가 10명에는 량원건, 류용싱, 션원룽, 마윈 등 기라성 같은 스타경영자들이 망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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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은 중국 토착기업들의 경쟁력 수준을 가늠해보고 중국 경영 및 비즈니스의 왕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고 밝혔다.

본 통신사는 중국의 10년을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LG료망중국(China Insight) 11월호’에 실린 중국의 회사들을 모델별로 게재하고자 한다. 스타경영인은 모아 소개한다.(편집자 주)

NSP통신

[4]마윈

“남자의 외모와 IQ는 반비례한다”는 마윈의 말은 적어도 그 자신에겐 딱 들어맞는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를 개척했으며, 인터넷 영역을 줄곧 고수해온 기업가이다.

그와 그의 팀은 중국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서 수많은 1등 사업부문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중국 최초의 인터넷 비즈니스 사이트인 중궈황예를 만들어 중소기업들에 B2B 모델을 제안하고 실현시켰다.

또한 그들은 전국에 걸쳐 ‘신용 플랜’을 추진하여 세계 최초로 기업 간 인터넷 신용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어냈고, 중국 인터넷 최대 회의인 시후룬젠대회를 발기하기도 했다.

오늘날 마윈의 알리바바 그룹은 전자 비즈니스 업계에 두루 발을 들여놓았다.

B2B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알리바바 네트워크는 치열한 국제경쟁에 직면한 중소기업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C2C 방식의 타오바오왕(淘??)은 내수진작 효과를 내고 있다.

제3자 비용지불 업무에 전문적으로 특화한 즈푸바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 개막된 ‘알리바바 제8회 인터넷 비즈니스 회의’에서 마윈은 “나는 바이두를 잠 못들게 하고 싶다”고 밝혀 바이두(百度) 검색엔진에 도전해보겠다는 욕망을 드러냈다.

기적은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인가.


[5]차오더왕
1987년 창설한 푸야오유리는 2010년 세계 유리시장 점유율이 세계 2위이며, 2011년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현재 중국 국내시장에서 70%, 세계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벤틀리(Bently), BMW, 벤츠, 아우디, 제너럴모터스, 도요타 등 8대 자동차 메이커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그가 거둔 성공은 모든 기업가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그는 중국 기업가들 중 비범한 유형에 속한다. 30년 동안 그는 자동차 유리 한 분야에만 종사해 왔으며 부동산, 인터넷, 광산 등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

주식투자는 아예 해본 적이 없다.

퇴직을 앞두고 뛰어난 안목과 판단력을 발휘해 엄청난 재산을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PE(사모펀드) 분야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줄곧 “사회적 책임감이 없다면 기껏해야 백만장자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며 오랫동안 선행을 베풀어왔다.

1983년의 첫 기부부터 지금까지 개인 기부금 합계가 50억 위안에 이른다. 중국에서 주주권을 기증한 첫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부를 갖고 있는 것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

기부를 하면 무거운 부담을 내려놓는 것과 같아 온몸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는 세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로 착한 사람은 위안룽핑(袁隆平. 벼 육종학자)이다.

그가 없다면, 지구상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사망할 것이다”라고 겸손해한다.


[6]쭝칭허우
와하하(娃哈哈)의 전신 ‘항주시상성구교반기업경소부’는 1987년 설립되었다.

쭝칭허우는 2명의 퇴직교사와 함께 14만 위안의 대출금으로 소다수와 막대 아이스크림,

문구류 등을 대리판매하여 한푼 두푼 벌어들여 기업의 토대를 다져나갔다.

그의 리더십 아래 2010년 와하하는 영업이익 550억 위안, 이윤과 세금 합계 112억 위안, 세금납부액 46억 위안을 기록해, 금액 기준으로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각각 8위, 1위, 2위를 차지했다.

그는 기업 경영에서 독특한 경험과 규칙을 만들어냈다. 주류 기업이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와하하는 전략이 없다.

나는 8~9년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내일의 일만을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마오쩌둥(毛澤東)이다.

“중국에서 현재 성공한 대기업을 보라. 모두 강력한 지도자기 있고, 모두 거대한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전횡적으로 경영을 한다. 중국의 현단계에서 기업을 잘 운영하려면 반드시 전제적이고 진보적으로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관리 스타일에서든 프랑스 식품업체인 다농과의 분쟁에서든 그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다.

어떻게 경영권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것인지가 이 독불장군 지도자가 맞닥뜨린 최대난제이다.

임창섭 NSP통신 기자, news1@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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