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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 정치칼럼

새정치 비전 결여한 진보의 암울한 미래

NSP통신, NSP인사 기자, 2015-02-04 12:17 KR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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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통신-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전 창조한국당 대표)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전 창조한국당 대표)

(서울=NSP통신) 현 민주진보 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두 번 연속 패했다.

절치부심으로 다음의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데, 오늘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누군가가 저 사람은 참으로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야! 라고 듣는다면, 이 말은 그에게 비극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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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대한 계획 없이 눈앞의 현실에만 매몰돼 이렇게 치고받고 저렇게 저지르는 행위만을 일삼는 사람에게 삶의 의미도 존재감도 미약할 것이며, 밝은 미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정당에게 체계화된 생각인 정치철학이 결여돼 있다면, 그런 정당의 존재 의미는 없다.

미래에 희망을 줄 정책이념을 갖고 있지 못한 정당은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

정책이념의 관점에서 조망하면, 오늘의 정치적 보수우파는 매우 유리하다.

기존의 관행을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제도를 수선하는 방식의 대처만으로도 부자와 기득권층,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의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가 우선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시장 자유주의를 주창하면 할수록 기존의 권력과 금력 집단으로부터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막강한 지원을 받을 것이다.

산업화를 일궈낸 훈장을 달고 있는 상태에서 영남이라는 많은 인구의 지역 기반도 갖고 있으니 유리한 국면이다.

이런 연유로 보수 정치판에는 영악하거나 탐욕으로 가득한 인사들이 많이 꼬이기 십상인데, 부패로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몸조심을 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보좌파 정치세력에게는 어떤 길이 놓여 있을까? 민주화를 일궈내고 인권을 신장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어서 두 번에 걸쳐 집권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가 단계적으로 성취된 지금의 현실 속에서 민주진보 정당은 제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

좌파 정치세력은 낡아버린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 허망한 종북주의를 따름으로써 국민 대다수의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도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편이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국민적 여망을 한 몸에 받았었지만 좌초될 운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와 그 집단은 새 정치의 이념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사회 현안에 처방할 원리적 해법을 갖지 못했고, 작은 파도에 휩쓸리다가 민주당과 합당함으로써 가까스로 제 몸이라도 건사하는 마지막을 선택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되고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를 맞이하여서도 국민이 공감할 정책적 소견 한번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수렁에 빠지는 당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은 2015년의 진보 정치세력은 어떤 모습인가? 참담한 지경이다.

진보좌파는 정치적 번지수를 못 찾고 있고, 최근 출범한 국민모임은 진보의 재편을 기획하고 있지만 여전히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에 갇힌 채 선명성이나 표방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더욱 좁히는 형세다.

핵심 당사자인 새정치연합은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진행 중인데, 볼수록 가관이다.

각각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과 문재인 후보가 호남과 친노라는 폐쇄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라도 새 정치의 비전을 밝히는 선의의 경쟁을 펼쳐서 국민에게 신선함과 기대감을 고양시켜도 모자랄 형세인데, 선거반영 여론조사 규칙 시비로 험악한 말이나 주고받는 치사스러운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민주진보 정치세력은 21세기를 맞이해 새로운 정치 청사진을 찾아 일관된 원리에 따라 각종 현안의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다잡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파의 자유주의가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등 공동체의 건강성을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그 해법을 바르게 모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귀가 있으면 듣고 눈이 있으면 보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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