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구조 재편
①SK·포스코·두산, 캐시카우 기반 구조조정 속도(서울=NSP통신) 최정화 기자 = 글로벌 경제와 산업 전반이 대변혁기에 접어든 가운데 경기침체 장기화가 지속되고 있어 그간 대기업을 지탱해 왔던 주력사업 중심 사업구조에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그룹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담당했던 사업과 미래 먹거리 사업을 결합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을 합병할 가능성이 크다. 그룹 캐시카우인 SK E&S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SK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배터리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SK온(SK이노베이션 자회사) 투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포스코그룹도 최근 주력사업이자 캐시카우인 철강사업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 동력 사업인 이차전지소재 사업 투자를 위해 120개 사업을 구조조정할 방침이다. 두산그룹도 캐시카우 두산밥캣과 미래 먹거리 두산로보틱스를 합병함으로써 시너지를 높일 계획이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오는 17일 이사회를 열고 양사 합병을 논의한다. 18일에는 두 회사 최대주주인 SK㈜가 해당 안건을 주제로 이사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와 관련해 지난 12일 공시를 통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사회 일정을 공개했다.
재계와 학계 등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기정 사실로 보고 있다. 합병 시기에 의견 차는 있으나 양사 합병은 성사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NSP통신과의 통화에서 두 회사 합병은 큰 무리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이르면 연내 합병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양사 합병은 최근 SK가 전반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를 돌파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며 “두 회사가 모두 상장회사면 소액주주 보호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데 SK E&S는 비상장사라 (합병하는 데)크게 문제될 소지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합병비율은 비상장 회사의 경우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주가 공식을 적용할 수 없고 현실적인 평가를 통해 양쪽 회사에서 합리적으로 회사 가치를 검토해 해결해야 한다. 이에 따라 두세 곳 회계법인을 통해 SK E&S 평가를 거칠 경우 양사 합병은 큰 무리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관건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KR의 승인이다.
최 교수는 “대개 이런 경우 대형 회사들이 주요 주주와 사전에 물밑 작업을 하는데 SK도 KKR과 장기간에 걸쳐 충분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KKR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이 정해지고 있을 것”이라며 “이사회가 KKR 승인여부를 짚을 것이고 KKR 요구사항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도 KKR이 주요 변수인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KKR은 2026년까지 SK E&S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RCPS 3조1350억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서 교수는 사모펀드는 합병할 경우 기본 차익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SK가 SK E&S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해 KKR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지원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SK E&S 지분율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SK는 SK E&S 기업 가치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SK E&S RCPS를 갖고 있는 KKR 승인 문제도 해결되는 셈이다. (3월말 기준 SK 지분율, SK이노베이션 36.22%·SK E&S 90.0%)
다만 기업 가치 산정 과정에서 주주들의 동의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합병비율 때문에 틀어진 사례도 많은 데다 SK가 SK E&S 기업가치 제고에 비중을 둘 경우 SK이노베이션 주주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SK이노베이션 주주 입장에서는 합병이 됐을 때 지분 가치가 희석된다면 반발하는 주주도 있을 것”며 “KKR과 양쪽 소액주주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어 수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는)기업 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객관적으로 주주들에게 제시해 동의를 구해야 기업 가치가 실질적으로 평가된 데 대해 양측 의견을 수렴해 합병비율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주력 캐시카우와 미래사업간 결합을 이차전지 등 에너지 부문 사업의 IPO(기업공개) 시장이 악화된 영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SK와 포스코의 경우 이차전지 시장이 죽으면서 IPO를 통한 외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KKR과는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SK이노베이션 개인 주주들이 반대는 하겠지만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다만 기존 주주들의 권익을 상당히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각 기업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두산로보틱스+밥캣…포스코 철강+이차전지소재
두산과 포스코도 계열사간 시너지 확대를 위해 캐시카우와 미래 성장동력간 합병 등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두산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합병한다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금창출력이 우수한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에서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옮겨 두산 미래 핵심사업인 스마트 머신 사업의 캐시카우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안도 임시주총을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우선 지주회사의 계열사 지배력이 탄탄하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를 각각 30.39%, 68.19%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가 46.06%를 갖고 있다.
합병과 관련된 기업 모두 상장회사라 지분구조에 입각해 인적분할해 합병비율 등이 정해지므로 법적으로 문제되는 건 없다. 다만 알짜 캐시카우를 넘겨야 하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 주주들은 이해득실 차원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두산지주 관계자는 “3대축(클린에너지·스마트 머신·반도체 및 첨단소재) 부문별 사업 시너지 극대화 및 주주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은 지주사업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안희준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밥캣에 대한 동사의 실질적인 지배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금창출력이 우수한 두산밥캣이 두산의 직간접적 배당수익 원천이 되는 동시에 성장국면에서 많은 투자가 수반될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두산 자체 지원부담도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포스코도 주력사업인 철강사업을 바탕으로 이차전지소재 사업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하고 2026년까지 97% 이상 사업구조를 재편할 계획이다. 다만 아직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목표가 정해졌지만 어떤 부분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이 어렵다”며 “(개편안이나 시기 등은)공시 사안이기 때문에 공개 불가하고 올 초부터 지속해서 추진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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