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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최인락 칼럼

호칭(好稱)인가, 악칭(惡稱)인가?

NSP통신, 도남선 기자, 2013-05-03 14:55 KRD5
#호칭 #악칭 #페친 #대인관계 #존칭
NSP통신-방송인 최인락.
방송인 최인락.

[서울=NSP통신] 도남선 기자 = 페이스북 친구(페친) A씨가 호칭(呼稱) 때문에 생긴 일화를 엊그제 타임라인에 올렸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어서자 직원이 미소를 띤 얼굴로 반가이 맞으며 “아버님, 서류 이쪽으로 주세요” 하더란다.

자신의 나이가 30대로 보이는 직원에게 공공연히 ‘아버님’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라고 믿었던 A씨는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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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나는 아버님이란 말이 듣기 싫어요. 내 나이 되는 사람들은 다 아버님인가요? 나는 (댁으로부터)아버님이라 불릴 이유가 없는데 그냥 손님이라 부르면 되지 않나요?”

그러자 옆에 있던 약국장이 급히 달려 와서는 사과를 한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입직원이라 모르고 그랬나 봅니다. 이렇게 젊어 보이시는데….”

“물론 이해합니다. 저도 아버님이라 보이지 않게끔 더 관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호칭은 더 신중하게 써 주시기 바랍니다”

A씨의 이야기는 손님 존중해 준답시고 자기네들 편하게 어법에도 맞지 않는 호칭(呼稱)을 쓰는 일이 많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 한국어에는 복잡한 호칭이 존재하며 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때로는 호칭을 잘못 써 낭패를 보기도 하고 큰 실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나와 상관없는 호칭으로 불릴 때는 불편하기까지 하다.

성인 남녀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 돼버린 ‘사장님’, ‘사모님’을 예로 들 수 있다.

외국인학습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우리말의 경어법과 함께 호칭을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학이나 취업 목적으로 한국생활을 하는 경우는 좀 덜하다.

그렇지만 평생을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결혼이민여성들은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호칭과 함께 다양한 의사소통 상황에서 상대를 구분해 호칭을 써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그 어려움이 비단 결혼이민여성들이나 외국인의 고민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 성 싶다.

결혼을 앞두었거나 갓 결혼한 가시버시는 배우자 집안의 어른과 그 가족, 친인척들을 적절한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숙제가 아니다.

배우자의 위계에 따라 손위, 손아래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며 질서(姪壻)나 처남댁, 서방님 같은 아리송한 호칭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갓 사회인이 된 젊은이들 또한 직장과 대인관계에서의 호칭 사용에 어려움을 겪지만 학교에서는 물론 어디에서도 배울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앞서 A씨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직원 역시 무심코 남들이 하는 것처럼 남자 손님을 ‘아버님’으로 불렀다가 몹시 무안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고객을 대하는 직원의 처지에서는 기혼 남성 고객을 ‘아버님’이라 부르지 않고 어떻게 불러야 할까 난감할 것이다.

‘손님’도, ‘고객님’도 그렇거니와 그밖에 남성을 부르는 호칭들, 이를테면 아저씨 선생님 사장님 등은 더 어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앞서 A씨의 바람처럼 ‘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손님’은 관공서에서도, 식당에서도 두루 쓸 수 있는 호칭이다.

하지만 ‘고객님’은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전화상담 등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두루 쓰는 ‘고객님’ 은 ‘고객’이라는 말 속에 이미 높임의 의미가 들어 있다.

또 우리말에서 접미사 ‘님’은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높임’을 의미하는 기능이 있는데 ‘고객’은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고 볼 때 ‘고객님’은 잘못이다.

그러면 반대로 ‘손님’은 직원에게 어떤 호칭을 써야 할까?

먼저 직원들의 직위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은 식당 같은 곳에서 남자 종업원에게는 총각 젊은이 아저씨 등의 호칭을 상대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면 무난하다.

여자 종업원은 아가씨, 아주머니로 부르며 아주머니를 아줌마로 부를 수도 있지만 친근한 사이가 아니면 피해야 한다.

옷가게 같은 데서 나이가 더 많은 손님이 종업원을 부를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한 나머지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예절에 어긋난다.

은행이나 관공서의 직원은 직책이 분명한 경우에는 성에다 직책을 붙인 뒤 ‘높임’을 의미하는 접미사 ‘님’을 붙여 ‘김 계장(님), 최 과장(님)’ 등으로 부르면 되고 ‘선생(님)’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호칭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를 가끔 본다.

진행자가 출연자의 직책을 그대로 사용해 ‘ㅇㅇㅇ 팀장님’, ‘ㅇㅇㅇ 부장님’으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ㅇㅇㅇ 씨’가 올바른 호칭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씨’를 두고 ‘(성년이 된 사람의 성이나 성명,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로 설명하였다.

비록 ‘씨’가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고는 해도 방송은 ‘공식적·사무적인 자리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과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로한 출연자일 때에는 우리 정서에 비추어 호칭이 조금 달라져야 할 것이다.

출연자의 직함을 붙여 ‘OOO 선생님’, ‘OOO 교수’ , OOO 회장’ 등으로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럴 때도 진행자의 연령 등이 출연자의 호칭을 결정하는 데 감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어에는 한국인의 문화가 담겨 있다.

우리말 호칭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살필 수 있다.

비록 우리말 호칭이 까다롭다고는 해도 신분과 관계, 상황에 맞는 올바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연령과 배운 정도와 지위가 높을수록, 가진 것이 많을수록 상대적 약자에게 배려가 담긴 호칭을 쓰는 것이 필요할 때이다.

아울러 내가 누군가를 대상으로 쓰는 호칭에 우월 의식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을 향한 공격의 수단이나 편견과 차별의 수단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럴 때의 호칭은 악칭(惡稱)이 되고 만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이 생겨나는 호칭(呼稱)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서로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해하고 화합하는 호칭(好稱)이 됐으면 한다.


최인락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학부와 일반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1983년 부산CBS를 시작으로 울산, 마산, 부산MBC, 부산TBN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한 30년차 방송인이다. 뜻을 함께하는 방송인들과 다문화 사회를 위한 '한누리방송(kmcb)'을 운영하며 5월 말 개국을 목표로 지역공동체라디오 ‘라디오 절영’을 준비 중이다. (사)한국다문화예술원 부산본부장. 한국방송언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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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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