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최인락 칼럼
돼지껍데기와 보쌈김치[부산=NSP통신] 도남선 기자 = 내가 별미로 여기는 음식으로 ‘돼지껍데기’가 있다.
나름의 조리법에 따라 양념을 한 뒤에 숯불이나 가스불이나 탄불에 구워먹는 돼지껍데기는 쫄깃하고 구수한 맛에다 피부에도 좋고 노화를 방지한다는 ‘콜라겐’도 들어 있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그런데 이 ‘돼지껍데기’는 ‘껍데기’가 아니라 ‘껍질’이 바른 표현이다.
또 하나의 예로 프랑스 시인 장 꼭도의 시 ‘귀’는 “내 귀는 소라껍질 / 바다 소리를 그리워하오” 로 번역된 짤막한 시다.
그런데 이 시의 ‘소라껍질’ 은 ‘소라껍데기’가 바른 표현이다.
윤형주의 노래 ‘라라라’에 등장하는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역시 ‘조개껍데기’이다.
돼지껍데기와 소라껍질에 쓰인 ‘껍데기’와 ‘껍질’.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점이 있는 이 두 단어는 가끔 혼동하기 쉽다.
껍질은 딱딱하지 않고 무른 물체에 붙어 전체를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를 뜻한다.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같은 것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을 이르는 말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껍질’은 사과 껍질, 귤껍질, 바나나 껍질은 자연스러운데 비해 조개껍질은 시어를 떠난 일상에서는 낯선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껍데기는 어떨까.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같은 것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이라고 했으니 조개나 굴, 호두 따위의 겉은 모두 ‘껍질’이 아닌 ‘껍데기’로 불러야 한다.
보쌈김치는 여러 가지 소를 넣고 배추 잎으로 보자기처럼 싸서 만든 김치로 개성지방 향토음식의 하나이다.
절여놓은 연한 개성배추의 사이사이에 납작하게 썬 무·사과·배와 채 썬 밤·대추 그리고 잣·미나리·파·마늘·생강·실고추·새우젓 등을 넣어 만든 소와 밤·대추·무·사과·배를 넣어 보자기 싸듯 싸서 만든다.
이 보쌈김치는 보쌈 즉 ‘보에 싸다’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우리 문화를 담고 있다.
보쌈은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한 빈한한 하층민의 혼인 방식이자 재가가 허용되지 않은 과부들, 양반가 자녀들의 액땜을 위해 이용되었던 약탈혼(掠奪婚)의 일종이다.
또 보쌈은 고려시대의 ‘자녀안(子女案)’이라든가 조선의 ‘경국대전’에서 보듯이 여성의 권리를 제한했던 사회적 제약을 배경을 지니고 있다.
보쌈김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끌면 보쌈에 담긴 한국의 문화가 더불어 관심을 끌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이나 국내외 한국어교육현장에서는 보쌈김치의 유래를 말하면서 문화와 역사를 함께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보쌈에 들다’는 속담의 표면에 담긴 뜻을 넘어 남의 꾀에 걸려들었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관용어의 교육까지도 가능하다.
어디 보쌈김치뿐이겠는가? 설렁탕, 도루묵, 뒷고기에 얽힌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진진하다.
폐백음식에 쓰이는 대추, 밤, 감이 지닌 의미가 각각 자손의 번성과 부모 자식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예로부터 이어져 오는 우리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음식은 맛과 이름으로 기억되며 그 이름에는 그 나라와 사회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음식의 이름은 앞서 돼지껍데기에서 보는 것처럼 어법에 맞지 않거나 이름만 듣고는 어떤 음식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도 많다.
돈까스, 비후까스, 오무라이스, 닭도리탕, 갈매기살이 그렇다.
반대로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던 이름이 지속적인 사용에 따라 생활 속에 정착된 예도 찾을 수 있다.
일본어에서 온 이름인 오뎅을 밀어 낸 어묵이 그렇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어묵이 이제는 당당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빵, 스파게티, 스테이크, 짜(자)장면 등은 마땅히 우리말로 바꾸기가 마땅치 않아 외래어를 그냥 쓰는 경우이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유래된 짜장면(炸醬麵, 작장면: 중국식으로는 자장미엔)이라는 이름에는 재료와 조리방식 등과 함께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첫 글자인 炸은 ‘튀기다, 기름으로 튀기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 거의 튀기다시피 볶는 조리방식이며, 다음의 醬은 장(간장), 마지막의 麵은 밀가루로 만든 국수라는 뜻이므로 각각 재료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름에서 재료를 파악할 수 있고 물이 귀하고 먼지가 많았던 중국의 환경에서 튀기는 방식의 조리법이 발달했다는 지리적 배경도 엿볼 수 있다.
그런 예는 찌단, 차오판 등 많은 중국음식에서 볼 수 있다.
불도장(佛跳牆)은 부추의 경상도 방언인 정구지나 월담초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우리는 그 음식이름에서 해당 국가의 문화를 배우게 된다.
보쌈김치가 국내외에서 고유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한국어와 함께 그 속에 담긴 문화를 알린다는 점과 통한다.
앞으로 우리 음식도 비빔밥, 막걸리, 파전, 뒷고기 등 세계인을 위한 차림표가 갈수록 다양해 질 것이다.
그 차림표에는 고유의 음식도 있겠지만 부대찌개와 같이 다른 요소와 배경을 지닌 것도 오를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적절한 음식 이름 짓기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시대를 떠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음식이 한국어의 어법에 맞는 이름으로 불릴 때 비로소 한국의 맛이 될 것으로 믿는다.
최인락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학부와 일반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 중이다. 1983년 부산CBS를 시작으로 울산, 마산, 부산MBC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을 진행했다. 현재 뜻이 맞는 방송인들과 함께 다문화 사회를 위한 한누리방송(kmcb)을 운영 중이다.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예술원 부산본부장, 한국방송언어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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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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