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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금당 최규용의 끽다래화두와 다도사상

NSP통신, 최상훈 기자, 2013-01-26 15:53 KR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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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통신-일타스님 친견후 같이 차를 마시고 있다
일타스님 친견후 같이 차를 마시고 있다

[부산=NSP통신] 최상훈 기자 = 금당 최규용선생은 1988년해인사에서 일타스님, 석정스님과 함께 중국 당나라 조주선사의 화두인 끽다거(喫茶去)와 대거되는 끽다래(喫茶來)란 신조어를 만들어 평생을 차 마시기 운도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가 팔만대장경, 경판고 보수 공사 때 퇴설당에서 참선하던 일타스님을 처음 만났고 이후 두 사람은 평생의 지기가 되었다.

그리고 석정스님은 그가 해인사에서 참선 수도할 때 진주 의곡사에서 해인사로 가끔 와서 달마도를 그리던 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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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선생은 그런 스님의 화필에 감탄하여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시로 오시오!]

깨달음을 얻게 되면 형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 보는 법이다.

조주선사는 그의 스승 남전화상이 입적하자 3년 상을 치르고 “일곱 살의 어린애라도 나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배울 것이요 백 살의 노인이라도 나에 미치지 못하면 가르칠 것이다” 라며 천하를 행각하다가 나이 80세에 관음원(觀音院)에 주석했다.

그 후 많은 구도자들에게 불법과 마음공부를 가르치며 선의 황금시대에 주역으로 활동했다

진리를 묻는 구도자에게 조주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와 본적이 있는가?”
“와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라고 말했다.
선사는 다른 남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스님은 “와 본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그대도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그러자 그 선문답을 들은 원주(院主)가 이를 의아해 하며 선사께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와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차를 권하고 와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차를 권한 겁니까?”
그러자 선사는 원주를 불렀고 그가 답을 하니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원주 그대도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임제(臨濟)의 고함도 아니요 덕산(德山)의 방망이도 아닌 참으로 애정 어린 노스승의 배려아닌가 ‘조주록(趙州錄)’에 나오는 끽다거(喫茶去) 이야기다.

이러한 조주의 ‘끽다거’ 화두를 오늘의 우리 차계에 더욱 어울리게 금당이 재창조해낸 또 하나의 화두가 ‘끽다래(喫茶來)’다.

이 ‘끽다래(차한잔 마시러 오게)’ 인사는 금당의 유명한 차 이야기가 되어 그 글자가 새겨진 기념비가 1997년 부산 초읍의 삼광사(三光寺) 뜰에 세워졌고 1999년 합천 해인사 지족암에도 건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국제 차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은 업적으로 중국인들에 의해 차 문화 교류 공덕비가 세워졌는데 1998년 10월 8일 항저우 서호(西湖)부근의 차인지가(茶人之家) 에 건립되었고 또한 2000년에 호북성 호주시에도 ‘끽다래’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한국의 제자들에 의해 2008년 부산시 구덕문하공원에 ‘끽다래’ 기념비가 세워져 매년 추모 헌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NSP통신-사진 왼쪽부터 삼광사끽다래비 구덕공원끽다래비 해인사지족암끽다거래비
사진 왼쪽부터 삼광사끽다래비 구덕공원끽다래비 해인사지족암끽다거래비

[금당의 다도정신]

금당 최규용은 생전에 육유 ‘다경’의 근본정신인 정행검덕의 사상을 바탕으로 차 생활을 하였으며 평소 차 마시는 이들에게 “천천히 살그머니 조용히 환담하면서 그 향기를 맡으면 한가한 경지에 자연히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생활차운동’을 이끌며 또한 매화가 필 무렵이면 반드시 다우들을 초청하여 풍류차를 즐겼던 차인으로 근 현대 동양 차 문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초의선사의 ‘동다송’과 ‘다신전’등을 연구하면서도 차 문화 시원 탐구는 마땅히 육우 ‘다경’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며 이는 어느 학문이든 그 원류를 밝히지 않고서는 대중화가 불가능하듯이 차 문화 연구 역시 ‘다경’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다도문화를 주도했던 한국 근현대 시기의 저면한 차 운동가였다.

금당다우를 찾아 공부하러오는 이들에게 손수 찻물을 끓이며 차를 우려내시면서 다례(茶禮)의 모습을 보여주며 평등과 검소함의 다도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또 포은 정몽주의 다음과 같은 다시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석정탕초비(石鼎湯初沸) 돌솥에 물이 끓고
풍로화발홍(風爐火發紅) 풍로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구나
수화용천지(水火用天地) 물과 불은 천지에 조화를 이루니
즉차의무궁(卽此意無窮) 이 뜻이야말로 무궁하구나

NSP통신-부산시 구덕문하공원에 끽다래 기념비가 세워져 매년 추모 헌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 구덕문하공원에 ‘끽다래’ 기념비가 세워져 매년 추모 헌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최상훈 NSP통신 기자, captaincsh@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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