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강은태 기자) = “회사의 성공 신화의 기반은 삼성의 협력 업체에 대한 상생 정책때문이다.”
고혁준 이노시티 대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반도체 제조기술전시회인 세미콘코리아 2014(SEMICON Korea) 현장에서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말했다.
NSP통신은 삼성맨으로 출발해 창업 8년 만에 400억 원의 매출 신화를 기록하며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전 세계 반도체 장비재료산업을 선도하는 20개국 530개 업체와 경쟁했던 반도체 장비 개조 전문 업체 고혁준 이노시티 대표를 만나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삼성과의 인연의 시작은.
1984년 9월 삼성의 반도체 회사에 입사 하면서 반도체 산업 분야에 입문하게 됐다.
그 당시는 반도체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한 시기였지만 최첨단 기술 분야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은 대단한 시절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처음 맡았던 업무가 디퓨전(Diffusion) 공정분야의 LP CVD 설비 유지 보수였다.
그리고 2001년 삼성을 퇴사할 때 까지 17년간 디퓨전 공정, 한 분야에만 종사했다.
삼성 퇴사 후 반도체 장비를 개조 하는 중소기업에 잠시 몸 담았다가 2005년 지금의 이노시티(InoC)를 창업해 현재까지 약 30여 년간 삼성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디퓨전(Diffusion) 공정이란
반도체 제조 공정은 전 공정과 후 공정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디퓨전(Diffusion) 공정은 박막(Thin film), 노광(Photo), 식각(Etch), (CMP&세정)CMP&Cleaning의 4가지 공정과 함께 전 공정에 속한다.
디퓨전(Diffusion : D/F)은 사전적 의미로 흩어져 널리 퍼짐을 의미하는데 마치 물이 담겨져 있는 컵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잉크가 퍼져 나가 섞이면서 물 전체가 균일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 현상인 확산(Diffusion)을 의미한다.
따라서 디퓨전(Diffusion) 공정이란 이런 확산 원리와 이치를 반도체 공정에 적용한 것 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디퓨전(Diffusion)은 크게 퍼니스(Furnace)와 임플란터(Implanter) 2파트로 나뉜다.
◆디퓨전(Diffusion) 입문.
처음에는 디퓨전(Diffusion)에 관해 아는 것이 없어 선배들이나 외국 기술자들에게 그저 열심히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설비를 알고 또한 엔지니어로서 능력도 갖추고 나니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졌다.
1990년도 초에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고, 이에 따라 삼성, 현대, LG등에서 대규모의 신규라인 투자들이 진행이 됐다.
그때 우리나라 반도체 공정 기술과 칩 양산 능력은 매우 우수한 수준 이었지만 정작 라인에 기본인 장비는 100% 해외에서 수입에 의존 하는 환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이 최첨단 산업이었던 만큼 그 생산 설비 역시 최첨단 기술로 이루어 져서, 장비 가격이 그야말로 천문학적 수준으로 고가의 장비들이었다.
따라서 엔지니어로서 느꼈던 답답함은 그 비싼 장비들이 우리가 볼 때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가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더욱이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았지만 우리가 직접 장비를 개조, 개선하는 일이 여러 가지 사용조건과 맞물려서 쉽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는 우리 아이디어를 해외기업에게 가르쳐 주면서 장비를 개선했고 지금도 많은 장비들을 해외 기업에서 수입해 오고 있지만 어쩌면 그 핵심 기술의 원천은 1990년대 우리 한국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라고 생각 한다.
◆반도체 장비 제조회사 창업
현장 엔지니어로써 삼성에서 주로 내가 담당했던 디퓨전(Diffusion)장비는 해외 제조사들의 장비였다.
그리고 그 장비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엔지니어로써의 나의 자긍심과 자부심은 직접 내 손으로 수입품보다 더 훌륭하고 완벽한 장비를 만들어 보자는 의욕과 함께 인생에서의 꿈, 목표를 확실하게 만들어 줬다.
또한 나는 가진 재산도 없고, 소위 말하는 아무런 배경도 없었지만 인생을 살면서 꿈을 도전조차 하지 못하면 너무나 후회될 거 같아, 용기에 용기를 내서 2001년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었던 삼성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 했다.
그리고 마침 반도체 장비를 개조하는 중소기업을 알게 돼 그 회사에서 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많은 경험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드디어 2005년 지금의 반도체 디퓨전(Diffusion) 장비개조전문회사 이노시티(InoCT)를 창업 했다.
1990년도의 반도체 산업은 과감한 투자와 기술개발 속도가 핵심이었다면, 2000년 중반은 코스트(cost) 경쟁력이 핵심이었고 신규 라인 투자 효율성이 중요한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
코스트 경쟁력은 곧 기존설비 재활용 방안이 최대 관건이고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지금이 최적이라는 판단으로 불과 5명의 인원으로 리스크가 컸지만 지금의 이노시티를 창업했다.
◆삼성의 상생정책은 내 성공의 기반
내가 창업을 결정 했던 2005년은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들이 이미 기존라인에 수백 대 이상 투자된 장비 특히 diffusion 잉여장비 활용 방안을 찾고 있어서 신규 장비 판매에 더 관심이 많은 외국 마켓들과 경쟁 할 수 있는 국내 개조 업체로서의 역할을 확보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의 덕분으로 자금압박 걱정 없이 기술개발에 주력할 수 있었다.
삼성은 상생 정책 시행을 위해 결제를 원하는 시기에 잘 지원해주었고 이런 배려는 이노시티도 협력업체에게 즉각적인 결재를 할 수 있게 해서 2차 협력사와 강건한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 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 생각해 보면 삼성의 상생 정책이 오늘날 이노시티의 성공 기반을 만들어 줬고 창업한지 8년 만에 새로운 공장 건축과 연 매출 400억 원 달성 신화의 원동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노시티 제2의 도약
현재까지 이노시티는 생존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왔지만 이제 제 2의 창업정신으로 다시 한 번 도약을 시작 하려 한다.
따라서 현재까지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앞으로는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래서 이노시티 고객을 행복 하게 해줄 수 있는 회사, 직원의 가정이 행복 할 수 있는 회사, 그리고 이노시티가 행복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고객과 직원의 가족과 회사가 행복 할 수 있는 회사를 위해서 우리는 리퍼비시(Refurbish) 전문 회사로서의 역량을 갖춰 반드시 이노시티의 제 2도약을 이루어 낼 생각이다.
처음 이노시티를 창업 할 때는 코스트 경쟁력을 위한 개조전문 회사를 목표로 했고 앞으로도 개조 전문 회사로서의 방향은 동일하지만 이젠 창조적 개조를 목표로 하고 싶다.
300mm 기준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투자된 장비가 수 천 대다.
이들 모두가 수십억씩 하는 고가장비지만 어떤 것은 그냥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고 신규라인 투자 시에는 또 새로운 장비를 구입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이노시티의 목표는 이런 장비들을 최대한 활용 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하고자 한다. 그리고 고객이 행복 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해 우리는 이미 우리 자체 S/W를 개발 했다.
또한 신규 장비 개발이 가능 한 수준으로 설계팀도 구성 했고 이미 제어 개발까지 묶어서 자체 연구소를 운영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는 장비에 유용한 모듈(Module) 개발을 시작한다.
단순 개조에서 끝나지 않고 장비의 기능을 향상 시키는데 기여하는 파트를 모듈 단위로 개발해 이를 제품화 하고 이런 개발과 투자를 통해 틈새시장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 것이다.
반도체 강국의 최강 리퍼비시(Refurbish) 전문 회사는 이노시티가 제2의 도약을 위해 꿈꾸는 원동력이다.
keepwatch@nspna.com, 강은태 기자(NS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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