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정치칼럼
이탈리아 좌파 혁명가 그람시 소환한 대한민국 우파정치와 진지전(서울=NSP통신) = 지난달 25일 북 미주 자유민주주의수호연합(회장 김일홍)과 Great Korea 미주본부(회장 곽인환)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 개최한 제5차 대회 강연자로 초청된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발언 중 ‘천하통일’이란 말이 대한민국 정가를 뜨겁게 달구며 김 최고위원이 머리 숙여 사과를 반복했다.
김 최고위원의 말실수 사건으로 각인 된 이번 사건은 지난 ‘5·18 발언’과 연루 돼 김 최고위원을 ‘국민 밉상’으로 낙인찍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야당의 도를 넘는 공격은 차치하고 여당 정치인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야당 대표에 대한 여당의 공격에 대해서 친명 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비 명계일지라도 당 밖에서는 염치를 따지지 않고 자당 대표를 엄호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같은 여당 의원들의 김 최고위원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나와 있는 발언의 전후맥락을 살펴보려는 태도조차도 아예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4시간에 걸친 강연 내용의 핵심은 집권당의 대통령이 추진코자 하는 개혁정책들이 왜 하나같이 암초에 부딪혀 제 자리를 맴돌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모색에 있다는 것임을 어느 누구나 알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누구도 관심 두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김 최고위원은 초청 강연에서 재미 동포들에게 이탈리아 좌파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이 이 시점에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한민국의 우파정치가 뜻밖에 이탈리아 좌파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그의 ‘진지전’을 소환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이 소환한 진지전은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해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과 싸우다 투옥된 뒤 집필한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Prison Notebook)에 담겨 있는 개념이다.
당시 그람시의 중요한 이론적 관심사는 자본주의 국가의 내구성과 안정성의 원인과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안정화 되어가는 가였다.
그에 따르면 ‘헤게모니(hegemony)’란 지배 질서가 단순히 사회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지적 리더십을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는 사회에 다수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안정’이 있음을 의미하며 국민이 현재의 지배 질서 구조에 자신들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이상, 목적, 문화적 의미들을 능동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국가라는 것은 공적 영역의 대표이며 시민사회는 사적인 영역의 대표다. 그는 시민사회에서 형성된 질서가 국가를 매개로 공식화된다고 보았다. 그 시민사회를 통해 국가는 모든 의식과 조직에 침투할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며 그런 속에서 국가는 강제 측면을 담당하는 정치사회와 동의를 창출하는 시민사회가 통합된 통합국가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기에 시민사회는 다양한 사회집단,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표출하고 조직화하는 영역으로 다양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다. 국가는 바로 이런 시민사회 영역에까지 침투해 사회 각계각층의 동의를 창출하면서 헤게모니적 지배를 구축한다.
이와 같이 그의 헤게모니론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핵심 부분을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에 둠으로써 국가적 이데올로기 작업이 도전받기도 하고 자발적 동의를 동원해 내기도 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즉, 지배 질서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고는 있으나 소수 집단의 문화적 권력과 무력한 다수 집단의 능동적 또는 수동적 동의와의 결합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취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지배 질서가 강제기구로서 국가기구를 복속한다고 해도 강고한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한 부분이 남아 있는 한 이전의 지배 질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혁명 당시 러시아는 기동전이 주효했지만 서구 사회의 경우, 국가기구라는 핵심 주변에 ‘시민사회’라고 하는 것이 참호처럼 둘러싸고 있어 참호를 하나하나 점령해나가는 진지전이 필요했고 시간과 인내가 필요함을 김 최고위원은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지났고 지방 권력도 상당 부분 회수했는데도 사회 각 부분의 진지에 들어가면 전부 다 아직도 전 정권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 사회 곳곳을 점령하고 있어 이 진지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총선에서 승리해서 사회 곳곳의 구조를 바꾸고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 있을 총선의 승리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이 당시 강연의 주 맥락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람시는 헤게모니가 피지배 계급의 동의를 획득하는 과정을 접합(artic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하나의 사회적 실천은 본질적으로 어떤 정치적 위치를 점하거나 사회적 정체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실재 사이의 투쟁을 거쳐 하나의 주체를 획득하는 접합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 입각한 진지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완수하고자 하는 모든 개혁정책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먼저 제시했어야 하고 그 이후 사회 곳곳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작업, 즉 진지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대한민국의 우파정치가 이탈리아 좌파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진지전을 소환했다고 명명한 것이다.
현재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비토는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야합,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저열함의 연속에 있다. 이를 보다 못한 국민들은 통계청의 2022년 한국의 사회지표 발표(23.3.23.)를 통해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 기관 중 국회를 최하위로 밀어냈다(지방자치단체 58.8%, 군대 53.8%, 중앙정부 50.0%, 경찰 49.6%, 법원47.7%, 검찰 45.1%, 국회 24.1%)
따라서 정치와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이 개혁의 헤게모니를 걸머쥐기 위해서 시대정신을 먼저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냄으로써 개혁의 추진동력을 얻어내었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개혁과제 실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전에 돌입하면 사회 곳곳의 만만치 않은 저항을 마주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저항의 디테일을 먼저 정리해야하는 것이 필수다. 여기서 우리가 김 최고위원의 강연 내용을 굳이 거론해야 하는 이유는 우파정치가 소환했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은 올바른 문제 제기이자 현실적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적인 개혁 정치를 위해 국민 밉상이 되어 버림 김 최고위원이 역설한 내용 중 나머지 하나가 집권 이후 사회 곳곳을 채울 우리의 시민사회의 역량이 필요한 것이고 그나마 단결이라도 돼야 하는데 광화문 아스팔트를 제외하고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표현상 사고(말실수)가 난 것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있다. 이유는 시민들로부터 이반되고 시민들이 실종된 정치의 영역에서는 결코 개혁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사회 입장에서도 좌우의 양 날개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기성의 관료화되고 정치화된 시민운동 역시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채 끝 간데없이 추락한 기성의 정치 권력과 함께 극한의 한계치에 다 달았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은 좌익이 우익과 만나는 양익의 힘으로 비상함으로써 균형 잡힌 새로운 차원의 시민운동이 발흥될 것으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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