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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금당의 제자, 호금(鎬錦) 류정호씨의 ‘금당회고’

NSP통신, 최상훈 기자, 2013-03-27 08:43 KRD6
#금당 #최규용 #류정호 #스토리텔링으로떠나는꽃차여행 #끽다래

현대 한국의 다성 故 최규용 선생 회고

NSP통신-금당 최규용선생이 즐겨 마시던 매화차
금당 최규용선생이 즐겨 마시던 매화차

[부산=NSP통신] 최상훈 기자 = '… ‘다경’을 지은 육우가 중국의 다성(茶聖)이라면, ‘동다송’에서 조선의 차를 노래하고 다도를 정의한 초의선사는 우리나라의 다성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 차문화를 눈여겨 본 중국의 차애호가들은 '끽다래(喫茶來 차 한 잔 하러 오거라)'를 펼치던 금당 최규용 선생을 현대 한국의 다성으로 칭하곤 했다. 생전에 백세 되는 해 청명 날 세상을 뜰 것이라고 공언했던 금당 선생은 과연 백세를 이루고 청명 일에 좌탈입망(坐脫立亡)하셨다.

평생 차를 곁에 두고 수행하듯 사신 금당 선생은 부산 송도 바닷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는 날이면 매화차를 우려 주셨다. 꿈틀거리는 수형이 금세 하늘로 오를 용과 같고, 이끼 덮인 나무 등걸은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범어사 고매(古梅)는 금당 선생의 풍류차 논객이었다. 고매에 매화가 벙글어 질 때면 탐매(探梅) 풍류객이던 금당선생은 백매 몇 송이를 따와 금당다우(錦堂茶寓)를 찾는 이에게 암향 그윽한 매화차를 내어주셨다.

선생은 매화 봉오리를 핀셋으로 조심스레 집어 엷게 우린 녹차 잔에 살짝 띄우셨다. 매화 봉오리가 한 잎 한 잎 열리며 투명하게 피어났다. 막 피어나는 매화는 봄 나비가 되어 둘러앉은 이들의 눈으로 코로 목 안으로 날아들었다. 암향은 또 어떠한가. 달착지근하게 달라붙는 향은 하냥 그윽해 송도 바닷바람도 문풍지를 연신 두들겨대며 풍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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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 꽃은 대개 노란 빛깔을 띤다. 그러나 매화 중에서도 백매는 봄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하얀 꽃이다. 흰색은 고요하고 안정되며 평화로운 인고(忍苦)의 색으로 속을 떠난 은사(隱士)의 빛깔이다. 그리하여 백매는 수도자의 꽃이다. 성당의 종탑 아래 하얗게 피어난 매화가 침묵의 향기로 이끌고 있다.…'

故 금당 최규용 선생을 회고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떠나는 꽃차여행’ 저자 금당의 딸, 호금(鎬錦) 류정호씨(56)를 26일 송도에서 만났다.

살다보면 어느 누군가로부터 삶의 이정표를 확 돌려놓는 영향을 받곤 한다. 물리교사였던 류정호씨가 차 선생으로 길을 갈아탄 것도 금당 최규용 선생님의 차 한잔에서였다고 한다.

류씨의 갈 길을 차의 길로 열어준 금당 최규용 선생.

"차 묵으러 오거래이."

인사 한번 나눈 사이면 누구든 짙푸른 송도바다를 바라보는 댁으로 차 마시러 오라던 금당 선생. 차 한 잔에서 소요(逍遙)의 참맛을 누리시던 선생께선 풍류라는 멋진 인생놀이까지 보여줬다고 한다.

“이른 봄이면 동래 범어사 백매(白梅) 송이 띄운 매화차로 풍류를 즐기시던 금당 선생님. ‘참 좋다~’ 길게 소리 내어 웃으시던 선생님께선 찻물이 배어든 매화꽃잎처럼 맑았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도 문풍지를 후려치는 바닷바람이 드센 부산 송도 금당다우(錦堂茶寓). 그런 날에는 으레 매화 꽃망울을 찻잔에 띄워 오롯한 생명으로 피어나는, 설렘과 환희에 찬 차 한잔의 진수를 건네셨다고 말한다.

“매화 망울에 내밀하게 숨었던 달착지근한 향이 하도 그윽해 문풍지를 마구 흔들어대던 꽃샘바람도 숨을 멈추고 방안을 기웃거릴 정도였으니…. 꽃차 한 잔으로 생명의 환희를 나누던 스승의 풍류는 해마다 봄이 오면 꽃길을 따르게 했고, 길에 피어난 온갖 생명을 엿보게 했습니다. 어디 계획대로 살아지던 인생길이던가. 펼쳐놓은 교과서의 활자들에 아무리 머리를 구겨 박아도 길에서 익힌 경험만큼 뼈저린 학습이 있겠나.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실핏줄 같은 산하의 길을 따르다보니 문득 사는 일이 재미있고 아름답다, 여길 때가 많습니다.”고 말했다.

그런 소박한 행복과 소소한 낭만의 언저리에는 풍류를 몸소 삶으로 보여주신 스승, 금당 최규용 선생을 류씨는 회고했다.

이십삼 년 전, 류씨가 일본 다도를 전수한 한 미국청년이 한국의 다도 또한 깊이 알고 싶어 해 함께 찾은 금당다우.

“백자 항아리에 꽂은 빨간 동백꽃 아래서 차의 어원을 알았고,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 ‘저 바다만 하데이.’ 갯마을 같은 송도 앞 바다를 내려다보며 중국 서호(西湖)를 일컫는 말씀에 중국차의 고장 항주로 달려가는 꿈을 키웠습니다.”

"청청한 초원의 풀 한 해에 한 번 마르고 무성하며 야화(野火)에 탄 듯싶어도 춘풍(春風)이 불면 되살아나도다."이따금 보내주시던 편지의 말머리는 항상 선생님 특유의 시로 시작되니, 메마른 젊은이 류씨에게 찻물 부어주시듯 감성을 돋아주셨다고 말했다.

"험하고 모지고 소란하고 복잡한 이 세상을 살아 왔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론을 짓지 못하고 천공의 일점 구름같이 사라지고 말 것 같습니다. 언젠가 주셨던 편지 글이 새삼 되살아오는 것은 이제 선생님의 그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그런지요.“

'끽다거(喫茶去)'와 '끽다래(喫茶來)'가 무에 그리 다르겠습니까만"차 한 잔 마시러 오너라."는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했던 말씀은 이제는 멀리 중국 항주시 차인지가(茶人之家) 경내의 공덕비에도 새겨져 있다고 선생을 찬미했다.

“생전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겨 들으시더니 넓은 파초 잎 아래 서 계실 선생께선 지금도 만세를 누리시던 이야기를 '끽다래'로 대신하는지요. 금당의 딸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빈 마음의 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름에 젖은, 외로움에 거리를 배회하는, 때로 젊음의 열기에 겨워하는 젊은이에게 선생님 말씀대로 ‘차 한 잔 하러 오게.’를 건네곤 하지요.”

보온병 꾹꾹 누르시어 따른 물로 몇 번이나 우려낸 엷디엷은 차를 즐기시던 금당 최규용 선생.

"차 묵으러 오거래이."

이제는 더 이상 힘찬 음성을 들을 수 없지만 빈 마음의 차 한 잔으로 가르쳐주신 선생의 무언의 메시지는 늘 함께 하고 있다며 “파도소리 담긴 차 한 잔에 선생의 내세 금당(錦堂)을 빈다.”고 류씨는 말했다.

◆호금(鎬錦) 류정호 주요 약력
- 서울 동작구
- 부산대 물리학과 졸업(이학사)
-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생명윤리학석사
- 한국 다도대학원 졸업
- 부산 동의중 과학교사 역임
- 가톨릭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 서울대 다도특강 전문강사 역임
- 서울대 국제대학원 언어교육원 차문화 강사 역임
- 국제음료학회 자문위원 역임
- 대학교 차학과 차학교육학 외래교수 역임
- 한국 다도대학원 부교수 역임
- 在 멕시코, 미국 교포대상 한국 차 문화 강의
- 결혼이민여성 및 다문화가정, '한국의 문화' 강의
- 駐美(덴버, 달라스)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NSP통신-스토리텔링으로 떠나는 꽃차여행 저자 금당의 딸, 호금(鎬錦) 류정호
‘스토리텔링으로 떠나는 꽃차여행’ 저자 금당의 딸, 호금(鎬錦) 류정호

최상훈 NSP통신 기자, captaincsh@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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