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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도배사 김정희. ‘수천만 번 칼질로 삶의 벽에 꿈을 이어 붙이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20-02-05 13:18 KRD2
#경주시 #도배사 김정희 #경주 김정희

죽음의 칼, 삶의 도구 삼아... 희망을 재단 해, 생의 꿈을 펼쳐

NSP통신-경주 도배사 김정희 사장이 도배 현장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권민수 기자)
경주 도배사 김정희 사장이 도배 현장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권민수 기자)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를 떠나 살아 본 적이 없는 여인. 그러나 대부분 고향을 떠나 전국을 삶의 무대로 삼고 있는 도배사 김정희 사장의 삶을 듣기 위해 그녀가 일하고 있는 울진으로 향했다.

김정희 사장의 삶의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하기 위해 경주에서 출발했다. 겨울비가 내리는 출발, 영덕에서의 화창한 날씨, 울진이 다가오자 갑자기 내리는 여우비는 그녀의 삶을 예고하고 있었다.

울진 현장. 그녀는 밝은 모습으로 3동의 부도난 맨션을 인수해 보수하고 있는 건물주와 보수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었다. 첫 대면의 모습은 ‘여장부’ 그 자체다. 기골이 장대하고 그침 없는 일 처리 모습. 그녀가 왜 이 거친 건설 현장에 있을까? 그녀의 삶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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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사장. 그녀 나이 올해 55세이다. 그녀는 경주시 동천동에서 1965년 2남 1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 장교 출신으로 조부의 가업을 이어받아 농업에 종사하는 부농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조모와 조부를 모시며 친친 시집살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그 시절의 보편적인 어머니였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그늘은 돌아가신 지금도 크다. 엄격한 군인 출신인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그녀에게는 두려움으로 남아 있을 만큼 엄격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녀의 어린 손은 항상 어머니의 소매를 부여잡고 어머니의 그림자 속에 숨었다고.

그녀에게 어머니는 아픔이고 안식이다. 조부모와 남편을 위해 새벽부터 밭에서 채소와 감자, 고구마를 캐고 가마솥에 따뜻한 밥을 지어 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뒤를 그녀는 항상 따라다녔다. 어린 그녀의 마음에 굳은살이 박힌 어머니의 모습은 아픔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안식처 어머니.

NSP통신-김정희 사장 도배 작업 모습. (권민수 기자)
김정희 사장 도배 작업 모습. (권민수 기자)

그녀는 경주에서 초등학교를 거쳐 여중으로 입학한다. 그녀의 체격조건이 탐난 체육 교사의 권유로 핸드볼선수 생활을 한다.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 2학년까지. 그러나 자신이 좋아한 핸드볼 선수 생활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 아버지 “여자는 시집을 잘 가야 한다. 사내놈들이나 하는 운동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는 일갈 때문이다.

그녀는 경주의 명문 여고에 입학했다. 이 또한 아버지의 지시이다. 경주에서 이 여고를 나오면 시집을 잘 갈 수 있다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믿었다고.

이와 같은 피동적인 모습이 아버지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그녀를 보호하고 시대의 일상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고통을 주리라고는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여고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그녀에 대한 지원을 끊어 버린다. 대학을 가고 싶어도 여자여서 가지 못하는 시절.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시집갈 준비를 하라는 아버지 몰래 용돈을 주고 자신의 삶을 살기를 응원한다. 여자의 설움이 복받쳐 어머니와 끌어안고 많이도 울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녀 나이 20세. 그녀의 여자로서의 반항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남자의 세상에 도전한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경주에 있는 공장의 생산직. 그녀는 여자의 틀을 벗어버리고 남자들과 공정한 경쟁을 하고 싶었다. 거친 작업환경도, 삐뚤어진 남자들의 편견도, 그녀의 결심을 포기하게 할 수 없었다.

끈질긴 그녀의 노력과 건성은 그녀를 최고의 생산직 사원으로 인정받게 해 검사직, 조장, 반장까지 역임하며 그 회사 처음으로 여성 생산직 마스터로 올라선다. 이때가 그녀 나이 26세다.

그녀는 이때 남성에 대한 아니 어쩌면 아버지의 그늘을 극복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늘은 자신의 결혼을 결정할 정도로 깊고도 깊은 영혼의 늪이었다. 부유하지만 가난한 그녀의 결혼식은 화려했다. 서울 부자 친지와 아버지의 격에 맞는 결혼식. 자신의 결혼식은 아니었다. 이때 그녀는 부에 대한 욕망을 품는다. 모든 것이 돈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대로 결혼을 하지 못한 그녀의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 없었다. 이 또한 시대의 아픔이다. 그녀 나이 30세. 그녀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유통업이다. 10년간 유통업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의 사업이 정착할 무렵 큰 금액의 어음이 오가는 거래를 한다. 물질적 욕망에 빠져버린 그녀는 이 거래로 인해 지난 40년의 생이 모두 무너진다. 가정도, 몸도, 마음도. 생명도.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도루코 칼날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 못했다. 늘 자신의 삶의 그늘에서 품어주던 어머니. 그 대지의 여신과 같은 사랑이 그녀를 죽음에서 삶으로 이끈다. 그녀는 그때 몰랐다. 그녀가 선택한 죽음의 도구인 도루코 칼날을 세상을 향해 수천만 번을 휘두를지를.

NSP통신-김정희 사장이 도배 작업 중 칼날을 부러뜨리며 회상에 잠겨 있다. (권민수 기자)
김정희 사장이 도배 작업 중 칼날을 부러뜨리며 회상에 잠겨 있다. (권민수 기자)

방황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며 끝을 맺는다. 다시 도전. 그녀의 선택은 도배사. 그녀의 친정집 보수공사 때 도배사의 멋진 모습이 그녀를 도배사의 길로 잡아 끌었다.

그녀 나이 43세. 장식장을 하는 지인 언니의 도움으로 3개월을 도배 일을 배우고 그녀는 현장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너무나 좋았다. 땀 흘려 일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삶의 고통도 아픔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을 얻었다.

그렇게 12년. 중년의 나이가 된 그녀는 오늘도 현장에서 부와 명예를 떠나 삶을 부여 잡고 우마 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녀는 하루에 도루코 칼날 두 통을 소비한다. 남들이 평생에 걸쳐 소비할 량의 수만 배의 칼날을 부러뜨리며 그녀는 삶의 아픔을 견뎌냈다.

건설 현장에서 그녀는 칼을 찬 무사와 같이 그침 없이 도배지를 재단한다. 수십 겹의 풀칠한 도배지를 단숨에 끊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전장의 무장과 같다.

그렇게 그녀는 수천만 번의 칼질로 자른 도배지를 자신의 상처 난 삶의 벽에 이어 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빨리 죽고 싶다. 살아 있으면 일해야 하니까. 일 하지 않으면 다시 죽을 것 같으니까”라고 푸념한다.

탈색된 그녀의 삶은 죽음마저 그저 희망일 뿐이다. 딸과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책임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때까지 그녀는 오직 희망의 벽에 풀을 바르고 자신의 꿈을 재단 해 이어 붙일 뿐이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위에는 나의 피와 땀으로 일군 재산을 훔치고, 갈취하고, 갚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어리석어 생긴 일이겠지만 자신의 양심에 벗어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녀는 평범한 여인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삶의 무게와 아픔을 품고 포기하지 않는 대한민국 어머니의 근성으로 삶의 끝까지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새해에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며 다시 우마 위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모든 어머니의 희생이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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