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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복의살아있으라사랑하라(20)

‘마야’를 잃은 건 인류의 엄청난 손실 - 멕시코

NSP통신, 김연화 기자, 2012-11-15 14:49 KRD1
#살아있으라사랑하라 #도용복 #멕시코 #칸쿤 #마야문명

유적도시 ‘욱스말’과 ‘치첸이트사’ 그리고 세계적 관광지 ‘아카풀코’

[도용복의살아있으라사랑하라(20)]‘마야’를 잃은 건 인류의 엄청난 손실 - 멕시코
NSP통신-기업인이자 오지탐험가인 도용복 회장.
기업인이자 오지탐험가인 도용복 회장.

[부산=NSP통신] 김연화 기자 = ‘태양의 대륙’ 라틴Latin의 정열이 살아 숨 쉬는 곳 기원전 2천년 미스터리의 문명 ‘마야’의 중심지였던 땅이다. 유카탄반도를 따라 거대한 신전과 현재도 불가해(不可解)한 건축술과 천문학을 자랑하던 마야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미지(未知)의 문명이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며 인류문명의 한 기원으로서 1천년 전까지만 해도 면면히 존재했던 마야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스페인 등 외부세력의 무지한 학살이 그 원인이라는 설과 마야내의 무분별한 개간이 ‘흑사병’에 맞먹는 병충해를 불러 급작스럽게 소멸되었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심지어 미확인 비행물체(UFO)에 의해 우주인에 끌려갔다는 ‘믿거나 말거나’하는 추측도 있다.

유카난 반도의 끝 마야문명의 출발지 메리다를 거쳐 내륙 밀림으로 들어서면 유적도시 ‘욱스말’이 나타난다. 욱스말은 마야 말로 ‘풍성한 추수’라는 뜻이다. 서기 6백년 쯤 동서 600미터 남북 1킬로미터에 걸쳐 조성된 주민이 5만명에 달할 정도로 큰 도시였다. 도시 내부엔 이례적으로 타원형으로 돌축을 쌓은 마법사 신전과 지평선 위로 금성이 내려앉은 지점을 정확히 직선으로 바라보며 만든 총독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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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듯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욱스말은 뭔가 알지 못할 이유로 3백년만에 홀연히 사라졌다. 돌무더기와 울창한 정글만 남긴 채 종언을 고했다. 유엔은 욱스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NSP통신-치첸이트사 전사의 신전. 어마어마한 기둥이 정연하게 세워져 있다.
치첸이트사 전사의 신전. 어마어마한 기둥이 정연하게 세워져 있다.

현재의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해 북아메리카에 위치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생겨난 마야는 중앙아메리카에까지 걸친 거대문명이었다. 중미에 널리 퍼진 인디헤나 원주민들이 멕시코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기원에서 비롯된다. 멕시코가 ‘라틴의 진수’라 불리며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도는 멕시코시티, 인구는 1억 400만 명이다.

미국에서 시카고의 황량한 사막을 건너 멕시코로 들어가기보단 과테말라에서 멕시코로 가는 길이 훨씬 운치가 있다. 멀리 자그마한 집들이 보이고 가로로 길게 늘어진 산들을 따라 중턱쯤 광산갱도가 군데군데 뚫린 것이 전형적인 중앙아메리카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엘도라도를 꿈꾸던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착취해 금맥을 캐던 역사의 아픔이 서린 정경이다. 그렇게 세계사에 간섭하며 닿은 멕시코의 첫 국경 마을이 치아파스 어꼬신고였다..

NSP통신-칸쿤의 아름다운 바다. 칸쿤은 특히 해변의 모래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칸쿤의 아름다운 바다. 칸쿤은 특히 해변의 모래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 소리에, 마이크 소음에 마을은 초입부터 시끌벅적했다. 이 소리들을 좇아 들어가니 한 초등학교에 다다랐다. 맨발의 아이들이 할아버지 가면 쓰고 지팡이 들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다소 어설프지만 귀여운 학예회가 열리고 있었다.

1년에 두 번, 학기가 끝날 때면 열린다고 한다. 워낙 빈곤하다보니 학예회가 곧 마을 축제였다. 이날은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생활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이 물씬 풍기는 웃음들이었다. 달리기며 릴레이, 오자미던지기로 온 가족이 한껏 신났던 우리네 1970~80년대 그 시절 가을 운동회처럼.

치아파스 어꼬신고를 벗어나면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태평양을 따라 신이 멕시코에 내린 선물인 천혜의 해변들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아카풀코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휴양을 위해 찾아든다.

최근엔 캄페체주(州)가 유명하다. 과거 스페인 요새가 있던 곳으로 아름다운 풍광과 풍부한 바다자원 때문에 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특히 칸쿤이란 도시는 해변의 모래가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행운의 모래’라고 소문이 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40여 년 전 칸쿤은 주민이 채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어촌이었다. 1960년대 말 멕시코 정부가 공사를 시작해 새로운 휴양지로 조성했다. 그 덕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방문객 수효도 급증하면서 지금은 최고의 리조트 해변으로 변모했다.

NSP통신-치첸이트사의 매머드급 피라미드 카스티요 신전 4면의 계단이 모두 91개씩 있고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1개 있다. 모두 합하면 365개, 1년에 해당한다.
치첸이트사의 매머드급 피라미드 ‘카스티요 신전’ 4면의 계단이 모두 91개씩 있고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1개 있다. 모두 합하면 365개, 1년에 해당한다.

아메리카 문명의 한 기원, 송두리째 사라져
밀림속 ‘욱스말’ 잉카 ‘마추피추’ 같은 방어선
‘치첸이트사’엔 축구로 제물 뽑는 그림 선명

여기서 의문 하나. 왜 마야는 뜨거운 태양과 따뜻한 해수(海水)가 있는 해변을 놔두고 사람이 살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밀림 한가운데에 욱스말이란 도시를 만들었을까? 작물을 기르기 어렵고 우기(雨期)면 몇 달간 끊임없이 비가 내리며 웅덩이의 벌레들이 수없이 많은 전염병을 퍼뜨리는데다 맹수와 독충마저 우글거리는 위험천만의 정글에다 왜 삶의 터전을 만든 것일까?

혹시 남아메리카의 사라진 문명 ‘잉카’가 중세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피해 고산지대에 ‘마추픽추’를 만들며 결사의 마지노선을 쌓은 것처럼 마야에게도 뭔가 두려움의 존재가 있었고 그들을 피해 누구도 생각지 못할 오지로 숨어든 건 아닐까.

밀림 속 욱스말의 마야가 사라질 무렵 유카탄반도의 중앙 석회암지대엔 새로운 유적지 ‘치첸이트사’가 세워졌다. 약 8,000만제곱미터(2,400만 평) 면적에 종교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대표적인 유적은 높이 25미터의 매머드급 피라미드인 ‘카스티요 신전’. 건축 연대를 추정해보면 서기 9백년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백년 전 돌을 쌓아 그렇게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게 기이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지구의 공전주기에 맞추어 전체 계단의 숫자를 365개로 한 것에 다시금 놀란다. 당시 천문학이 현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마야의 그러한 미스터리는 이제 인류가 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서.

치첸이트사는 이전의 마야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새겼다. 해마다 한 사람씩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의 해골을 판에 찍어 유적 벽면에 붙인 것이다. 제물로 바칠 인물은 지금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통해 결정했다. 유적의 한 쪽 벽면에 축구골대 넓이로 구멍을 뚫고 길이 165미터 경기장에서 팀당 7명씩 선수를 편성해 작은 고무공을 이리저리 패스하며 골대에 집어넣는 ‘펠로타’라는 공놀이가 그것이다.

선수들은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마치 전사처럼 경기에 임했고 이긴 팀원 중 가장 건강한 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 이 대목에서 다시 의문. 마야는 왜 밀림에서 벗어난 이후 종교의식에 매달렸을까? 다른 전설이나 신화에서 보듯이 제물로 예쁜 처녀를 바치지 않고, 가장 건강한 사람의 심장을 올린 이유는 또 무엇인가? 혹시 인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적에게 패한 뒤 항복의 조건으로 건장한 청년을 바쳐야 했으며, 또 그러한 상황을 역전시키려 신에게 의탁해 승리를 기원한 건 아닐까.

NSP통신-원주민 소녀들이 수공예품 직물들을 한아름 안고 팔고 있다.
원주민 소녀들이 수공예품 직물들을 한아름 안고 팔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제물이 되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해서 경기에 이기려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체첸이트사의 유적들은 골대를 걸었던 구멍과 맞은편 벽면에 새겨진 경기 장면을 통해 당시 모습을 제법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마야 유적지에서 이러한 경기장이 발견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체첸이트사이다.

욱스말과 치첸이트사로 이어지던 마야가 멸망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스페인과 멕시코 외부세력의 침입을 꼽는 학자들이 주류다. 도시를 중심으로 급작스럽게 인구가 늘자 척박한 땅마저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병충해가 증가하고 면역력이 약화돼 근세유럽의 흑사병처럼 대규모로 병사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밖에 무분별한 산림벌채와 화전으로 환경이 악화돼 더 이상 먹고 살 수 없게 되자 딴 곳으로 대이동했다는 견해도 있다.

마야의 멸망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무엇도 확실치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마야의 거대한 유적과 유물이 그대로 남았음에도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뒤를 이은 스페인이나 멕시코인들이 그들의 흔적을 보전하고 지키기보단 약탈하고 빼앗고 파괴하는 데 더욱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추측할 수 있는 흔적들은 대부분 후대에 의해 사라지거나 부서졌다.

무분별한 식민지 개척과 금광전쟁, 나아가 일부 국가의 제국주의 야망이 수천년을 이어온 마야를 송두리째 없애버린 건 인류의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마추픽추의 잉카와 더불어 인류는 그렇게 두 개의 문명을 잃었다

김연화 NSP통신 기자, yeonhwa0802@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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