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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최인락 칼럼

윤창중과 전효성으로 본 ‘사과(謝過)의 품격’

NSP통신, 도남선 기자, 2013-05-18 21:23 KRD5
#윤창중 #사과 #전효성 #민주화 #전효성발언논란
NSP통신-방송인 최인락.
방송인 최인락.

[서울=NSP통신] 도남선 기자 = 요즘 인터넷에는 사과(謝過)라는 단어가 넘쳐난다.

‘취업특강서 막말’ 공식 사과, ‘대리점에 횡포’기업 대국민 사과, 뒤늦은 사과... 뒤돌아서는 유가족, 김용만 ‘도박 혐의, 머리 숙여 사과..., 전효성 ‘민주화 발언 논란 공식 사과...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사과(謝過)다. 자고나면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제기되는 윤창중 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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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윤창중 씨의 기자회견문에 나타난 대표적인 사과 관련 어휘는 사죄(謝罪)다. 사과(謝過)보다는 그 강도가 더 높은 표현인 사죄는 “용서를 빌며 머리 숙여 깊은 사죄드린다”,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성공적인 정상회담에 물의를 끼친 것(에 대하여) 깊이 사죄드린다” 등에서 세 번 사용됐다.

‘사죄(謝罪)’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행위이다. ‘용서를 빌며’ 역시 ‘사과한다’ 로 우리는 해석한다. 또 ‘죄송하다(罪悚하다)’는 ‘죄스러울 정도로 황송하다’를, ‘미안(未安)’은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움’을, ‘송구하다(悚懼하다)’는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를 말한다.

언어학자 Goffman은 사과 화행을 ‘치유 대화(remedical interchange)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 후에 ’치유적 행위(remedial work)‘를 통해서 가해자가 피해자와 맺고 있던 사회적 유대감을 다시 확립하는 것이다.

사과를 할 때 화자는 책임 인정하기 전략으로 청자에게 치유적 행위를 시도하게 된다. 책임 인정하기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사실과 사회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른 것을 표면적으로 인정하는 전략이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게 되면 사과를 받아야 할 상대를 심리적으로 안심시킬 수 있고 사과해야 할 부담의 정도를 낮추게 할 수도 있다. 책임 인정하기는 자기 책망, 의도가 없었음(고의성 부정하기), 청자의 의도 묻기, 합리화하기, 책임 거부하기, 자신의 결함 표현하기, 명백한 책임 인정, 보상하기, 약속하기, 관심 갖기, 설명하기 등의 다양한 전략으로 실현된다.

회견문에 나타난 사과 화행을 분석해 보자.

첫째, 자기 책망은 명백하게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전략이다. 자기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사과의 부담 정도를 낮추게 한다.

“먼저 제가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 여러분과 박근혜 대통령님께 거듭 용서를 빌며 머리 숙여 깊은 사죄드린다”

둘째, 고의성 부정하기(의도가 없었음)는 자신이 잘못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밝힌다. 고의적인 잘못이 아니라 우발적 실수인 것을 알림으로써 위반의 심각성을 줄이게 된다.

“교포 학생인데 또 나이도 제 딸과 같은 제 딸 정도 나이밖에 되지 않았는데 제가 너무 교포를 상대로 심하게 꾸짖었는가라는 자책이 들었다”

셋째, 약속하기 전략은 위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특히 화자의 죄의식이 강할 때 사용하게 된다.

“앞으로 저는 제 양심과 도덕상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갖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겠다”

그런데 회견문에는 피해자인 인턴 직원에 대한 사과나 사죄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것은 (청자에게)관심 갖기, 설명하기 전략을 스스로 포기,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거나 사안에 대한 인식이 우리사회의 상식과 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자에게 관심 갖기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청자가 받은 피해에 관심을 갖는 것이며 설명하기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게 된 원인에 대하여 이유를 제시해 사과를 표현하는 전략이다.

다만 “그 가이드에게 이 자리에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겠다”고는 했다. 여기서 위로(慰勞)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표현이다.

아쉬운 것은 “그 인턴에게도 사죄와 함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겠다”라는 표현으로 ‘미안하고 사과’하는 마음이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음에도 ‘위로’라는 표현만으로 (인턴에게는)사과할 정도의 잘못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범죄는 물론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로는 할 수 있을지언정 사과나 사죄는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 무용(無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유용(有用)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해자나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도 사과가 일어나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마땅히 사과가 따라야 한다. 사과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시기를 놓침으로써 사과 화행이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에서는 이번 사태를 보는 윤창중 씨의 시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한국 사회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일이 미국 사회에서는 문제가 됐고, 또 그러한 행동이 미국에서는 문제가 되는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잘못일 뿐 큰 잘못은 없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도 갑의 지위에 있는 남성이 을의 지위에 있는 여성에게 밤늦게 술을 마시기를 요구하고 (엉덩이를 움켜쥐거나)허리를 툭 치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반성’은 자신의 언행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본다는 의미이다.


언행군자지추기(言行君子之樞機)라는 말이 있다. 추기(樞機)란 사물의 중요한 대목 즉 요처(要處)를 말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언행에 한층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사람은 누구나 술을 마시게 되면 말도 많아지고 조심성이 없어진다. 주후토진언(酒後吐眞言)이라 하여 술자리에서도 신중해야한다는 중국과는 달리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술자리에서의 실수는 비교적 관대하게 처분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윤창중 씨가 재벌 총수에게는 90도로 인사하면서 업무가 서툰 인턴 여성에게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뽐내며 남을 멸시하는 일을 두고 ‘예기’에서는 오불가장(敖不可長)이라는 표현을 썼다. 오만한 마음이 표정이나 태도에 나타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말한다.

또 ‘역경’에서는 前善則遷 有過則改(전선즉천 유과즉개)라 하여 선은 바로 배우고, 잘못은 빨리 고쳐야 함을 말했다. 잘못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빠른 시기에 분명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태는 근래 국격이 높아진 모국을 돕는다는 자부심을 지닌 한 교포 여학생과 교포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또한 막중한 임무를 띤 공직자로서 물의를 일으켜 국가의 명예를 실추하고 국론을 분열시킴으로써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큰 부담을 줬다.

그러나 저두평신(低頭平身)해야 할 윤창중 씨는 인턴직원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인턴 직원이 서툴렀고, 실수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당한 피해가 심각했음을 탓하기에 급급했다. 자신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딸 같은 교포가 안쓰러워 위로차 밤늦게 술을 마셨을 뿐 성범죄와 관련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고 했다.

성범죄와 관련된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이 글에서 언급할 것은 못 된다. 다만 공직자에게는 자신을 위한 변명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우선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도 묵묵히 땀 흘리고 있는 공직자를 향한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최인락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학부와 일반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1983년 부산CBS를 시작으로 울산, 마산, 부산MBC, 부산TBN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한 30년차 방송인이다. 뜻을 함께하는 방송인들과 다문화 사회를 위한 '한누리방송(kmcb)'을 운영하며 5월 말 개국을 목표로 지역공동체라디오 ‘라디오 절영’을 준비 중이다. (사)한국다문화예술원 부산본부장. 한국방송언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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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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