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락의 옴니암니
기성용, 그리고 SNS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부산=NSP통신] 최인락 객원기자 =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야 할 새신랑 기성용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촉발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강희 전 남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스포츠동아, 3일)에서 기성용을 두고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 한다. 그런 짓은 비겁하다. 뉘앙스를 풍겨서 논란이 될 짓은 하면 안 된다”고 비판한 것이 시작이다.
최강희 감독의 이 발언은 기성용이 6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고 한 발언에 대한 대답으로 해석된다.
당시 기성용은 허벅지 부상으로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레바논-우즈베키스탄-이란)에서 빠졌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메시지라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논란이 일자 기성용은 ‘교회 설교의 일부’라는 해명과 함께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했다.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전후맥락이 배제된 채 보도된 최강희 감독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기성용의 발언에 대한 반응으로는 상당한 강도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강희 감독이 평소에 보여준 언행과는 차이가 컸기 때문에 의문은 커졌고 이 일은 감독과 선수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으로까지 비쳤다. 급기야 윤석영의 혈액형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우리 모두를 SNS파동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김현회 축구기자가 기성용이 과거 SNS에서 행했던 미공개 발언들을 공개했다. 전후사정을 볼 때 다분히 최강희 감독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되는 글들에서 기성용은 최강희 감독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어를 생략한 채 무차별적으로 내뱉어 놓은 듯한 발언들은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한 감독을 향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뒤이어 기성용의 SNS가 문제가 된 과거 발언까지 다시 들추어졌다. 2007년 당시 기성용이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당시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지적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 한다”
필자는 전후 맥락을 살피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를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해 보았다.
-2012. 2. (최강희 감독, 인터뷰) “스코틀랜드 리그는 팀 간 격차가 크다. 셀틱을 빼면 내셔널리그 수준”
-2012. 2. (기성용, 트위터) “고맙다. 내셔널리그 같은 곳에서 뛰는데 대표팀으로 뽑아줘서”, “쿠웨이트 전은 주영이형과 나의 독박무대가 되겠군. 소집 전부터 갈구더니 이제는 못하기만을 바라겠네. 재밌겠네.”
-2012. 2. (기성용, 트위터) “이제 모든 사람이 느꼈을 것이다. 해외파의 필요성을.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됐다.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2013. 6. 1. (기성용, 트위터) “리더는 묵직해야한다.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기성용은 허벅지 부상으로 최종예선 레바논, 우즈베키스탄, 이란과의 경기를 앞두고 명단에 빠졌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메시지라는 추측)
-2013. 7. 3. (최강희, 스포츠동아)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 한다. 그런 짓은 비겁하다. 뉘앙스를 풍겨서 논란이 될 짓은 하면 안 된다.”
-2013. 7. 3. (기성용, 인터넷 카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삭제했습니다. 팬들과 소통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는데 오히려 오해를 샀고 하고 싶은 말들이 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2013. 7. 3. (최강희, YTN)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은 본인들이 판단할 일이다. 변명을 해야 할 일도 아니다. 난 이제 국가대표팀 감독도 아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영국으로 떠나는 사람을 그렇게 보내게 돼 아쉽다”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한편 윤석영도 최강희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반박하는 트윗을 올리며 논란에 가세했다. 윤석영은 최강희 감독이 “혈액형으로 얼추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O형은 성격은 좋지만 덜렁거리고 종종 집중력을 잃는다.”고 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과 박지성 등이 모두 O형’이라며 반박에 나섰다. 그런데 비난 여론이 일자 “늘 선수들을 챙겨주는 고마운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발을 뺐다.
두 발언의 맥락으로 보아 기성용과 마찬가지로 최종 3연전에서 배제된 윤석영이, ‘다른 감정’없이 혈액형으로 성격을 평가하는 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덜해 보인다.
참고로 최강희 감독은 3일,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혈액형으로 얼추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B형은 성취욕이 강한 반면 O형은 성격은 좋지만 덜렁거리고 종종 집중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란전을 앞두고는 김영권에게 “오늘은 상대공격수 붙여서 드리블하지 말고 애매하면 걷어내라.” 라고 한 대화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란전이 끝난 뒤 실수로 결승골을 헌납한 김영원에게)악수하고 괜찮다고 했는데 쉽게 지워지진 않을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강희, 홍명보 두 감독의 선수시절(?) 혈액형은 B형”
기성용의 말처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은 ‘평소 가까이 지내는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공간에서 기성용은 마치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생각(울분?)을 토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들추어진 트위터의 글들이 (도용된 것이 아닌)기성용이 쓴 글이 맞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선수이자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선수로서는 입이 가벼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홍명보 신임 남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이같은 SNS 파동과 관련하여 4일 “나의 매뉴얼에 SNS는 없다”고 말해 대표팀 소집 기간 동안 선수들의 SNS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아울러"일상의 한 부분인 SNS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대표팀 소집 기간에는 내부의 일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선수는 그라운드서 말하는 거야”
필자는 이 파동을 우리사회에 잠복해 있던 세대 간 문화의 차이가 SNS를 통해 표출되었다고 보았다. 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를 선호하는 세대와 대화는 통화나 직접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 세대 간의 문화 차이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젊은 세대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기성세대가 “찾아와야 한다.”고 말하는 의도가 계급으로 상대를 누르기 위한 유교적 사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사회 기성세대들은 어른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들을 이제 더 이상 나무라지 않는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짙은 스킨십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젊은이들을 잘못 대했다가는 자칫 봉변당할 수도 있다’와 같은 몸사림이 아니다. 그러한 태도의 변화는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이자 ‘문화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여서 늘 변화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평생을 두고 체험해 온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기성용이 화제의 중심인 만큼 지난 1일 거행된 기성용의 결혼을 보는 축구인들의 발언을 통해 기성세대의 시각을 들여다보자.
지동원과 홍정호, 김현성 등은 결혼을 하면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어 경기장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원로 축구인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연예인과 축구선수가 결혼하면 둘 중 한 명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해야 내조가 가능하다. 기성용은 현재 한국 축구의 중심인데 결혼으로 흔들릴까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오직 미래만을 보는 세대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세대의 시각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 한다. 그런 짓은 비겁하다.”고 호통 치면서도 “결혼식을 마치고 영국으로 떠나는 사람을 그렇게 보내게 돼 아쉽다.”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기성세대이다.
“월드컵을 대한민국의 무대로”
최강희 감독의 ‘오해를 살만한 일은 조심해야 한다’를 ‘SNS를 이해 못하는 기성세대의 답답함’으로 볼 것인가? 얼굴을 마주한 채 눈빛을 나누는 가운데 가슴을 열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제자 사랑으로 볼 것인가?
이번 파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월드컵 8회 연속 본선진출을 이루어 낸 선수들과 최강희 감독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U-20 어린 선수들이 우승후보 콜롬비아를 꺾고 8강에 오른 기쁨에 젖어야 할 국민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큰 충격은 논란의 중심에 선 기성용이 받았을 것이다.
논란의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축구인은 모두가 ‘내 탓이오’하는 심정으로 자세를 낮추고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축구팬들 또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허물은 덮어주고 격려해 주는 우리사회의 전통을 되살릴 때다.
기성용과 젊은 선수들이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경험 많은 선배들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월드컵 무대를 휘젓는 모습을 그려본다.
최인락 NSP통신 객원기자, remark@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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