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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경주 읍성 통일신라시대 팔부중상 부조 발견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20-02-21 14:28 KRD7
#경주시 #경주 읍성 팔부중상 발견

경주 읍성, 동벽 치성... 팔부중상 면석 3매, 기단석 재사용 확인

NSP통신-경주 읍성 치성 기단석 세부 및 팔부중상 모습. (경주시)
경주 읍성 치성 기단석 세부 및 팔부중상 모습. (경주시)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경주시는 한국문화재재단과 추진 중인 경주읍성 복원정비 사업부지 5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재사용되었음을 확인했다.

팔부중은 부처의 설법 청중을 구성하는 다양한 무리 중 하나로 인간 이외의 다양한 존재를 일컫는 집합적 용어이다. 천(天)ㆍ가루라(迦樓羅) / 용(龍)ㆍ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 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喉羅伽) 등 하늘의 천신(天神), 땅에 사는 지신(地神)과 축생(畜生), 물에 사는 수신(水神), 그리고 인간도 신도 아닌 반인반신(半人半神)이나 귀신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팔부중상 면석은 다른 나라 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창안된 독특한 부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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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중상’ 이 부조된 탑재 3매는 읍성 5구간인 경주읍성의 동문의 체성 벽에 덧대어 있는 치성의 가장 아래인 기단석으로 사용됐다. 5구간에서 치성은 현재 1개소만 확인됐다. 최근까지 주택이 있었던 자리로 기초석과 기단석 정도만 남아있다.

팔부중상이 부조된 면석 3매는 치성 기단의 북쪽과 동쪽 모서리를 연결하며 놓여 있으며 기단석에는 팔부중상의 면석 이외에도 탑 부재들과 건물 터의 주초석 등이 사용되었다.

현재 기초석의 침하로 팔부중상 면석들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다. 팔부중상의 부조 면이 위로 보며 놓여 있기 때문에 치성이 축조되었을 당시에는 그 위로 많은 석재들이 올려져있어 성벽 외부로 상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치성을 올리기 위한 기초석의 범위는 동서 길이 11m, 남북 너비 11m이며, 치성 기단석의 범위는 길이 10m, 너비 8m 이다.

‘팔부중상’ 면석 3매에는 각 1매에 1쌍의 팔부중상이 부조되어있다. 이번에 출토된 팔부중상은 탑의 서탑의 서쪽 (천·가루라)에 사용되는 면을 제외한 북쪽(긴나라‧마후라가)‧남쪽(아수라‧건달바)‧동쪽(야차‧용)에 사용하는 3면의 면석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팔부중상이 부조된 석탑과 탑재 중에서 동일한 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각 전체가 8세기대의 조각양상에 비해서 정교하지 못한 편이고 천의 자락 날림이 부자연스럽고 손 모양도 변형된 점 등으로 미루어 9세기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관련 전공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경주읍성의 치성은 발굴조사를 통해서 체성과는 별도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며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조선시대 세종(1418~1450년)연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종섭 한국문화재재단 팀장은 “치성이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볼 때 팔부중상 석탑재가 성벽의 석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사상적 배경과 불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고 밝혔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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