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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크리스마스트리의 비밀, 형이 남긴 보이지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21-05-10 13:02 KRD2
#경주시 #5월 크리스마스트리의 비밀 #형이 남긴 보이지 않는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경주시 농막

먼저 간 형, 끈기지 않은 동아줄로 생명을 묶어 동생에게 전해 ‘살라고’

NSP통신-경주시 시골 골짜기 농막. (권민수 기자)
경주시 시골 골짜기 농막. (권민수 기자)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5월 볕이 참 좋은 날. 어느 시골 농막 테라스에 선 그의 시선이 문득 옆 산 무덤 넘어 소나무 숲에 닿았다.

짙어가는 녹음을 거느린 하늘 높은 소나무. 그와 형의 5월 크리스마스트리이다. 소나무 숲 그늘 밑에 꼭 닮은 쌍둥이 형제의 모습이 짙은 솔향처럼 배어 있다. 속절없는 그의 눈물이 계곡의 물소리에 묻혀 흐른다.

그는 잊었다 생각했다. 그의 형을. 너무 아파 잊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매년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나 연록의 추억을 키워 짙푸른 녹음의 추억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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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형과 매년 저 소나무 숲 아래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다리며 서로를 위한 선물을 곱게 포장해 묻었다. 누구도 보지 못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뜨거운 여름 태양의 생명력을 다 담아낸 나뭇잎들이 흙으로 돌아가 또 다가 올 봄을 준비하는 나무의 밑거름이 되는 계절. 12월. 홀로 남은 높푸른 소나무 뿌리엔 그와 형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짙은 솔향을 품고 서로에게 선물이 됐다.

5월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빚은 송근주. 긴 기다림의 끝에 두 형제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돼 서로의 짙은 향을 나누게 한 술.

그는 형이 가고 한 번도 장식하지 못한 5월의 크리스마스트리를 향해 걷고 있다. 보고 싶어, 추억이라도 잡아 보려, 5년 만에 그 자리에 섰다.

두껍게 쌓인 솔잎 속에 묻힌 형의 얼굴을 찾아 헤집는 시선에 소나무 밑 둥을 감은 형과의 하얀 추억의 동아줄이 보였다. 같이 묻고 떠나 타지 생활하든 그에게 “다 찾아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술을 잃어버리지 않게 묶어둔 흰색 동아줄이 끈기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그만 남기고 간 형의 멱살을 잡아채듯 하얀 동아줄을 잡아 올렸다. 동아줄에 술병이 딸려 올라왔다.

NSP통신-소나무 숲에서 발견한 송근주를 정제한 모습. (권민수 기자)
소나무 숲에서 발견한 송근주를 정제한 모습. (권민수 기자)

형이 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남기고 갔다. 멈춰버린 시간, 하늘 끝에 닿은 뿌연 시선, 꽉 깨문 입술, 끝없이 흐르는 눈물의 무게에 그는 무너졌다.

까만 어둠속에서 점이되어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그에게 아이들의 청아한 웃음소리가 천둥이 되어 때렸다. 계곡에 물놀이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살아 있음으로 받은 죽은 자의 선물. 살아 자신과의 추억을 간직해 주길 바라는 소중한 이의 염원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의 슬픈 삶 속에도 기쁨과 행복이 내재돼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5월의 푸르른 소나무처럼 그의 얼굴에 푸른 미소가 짙게 물들어 갔다.

낙엽이 떨어지듯 삶이 떨어져도 끝이 아니다. 떨어져 자양분이 되어 다른 이의 삶에 생명의 에너지로 전해진다. 오늘처럼.

그의 형이 간 날. 가을이오면 그는 형이 준 선물을 올리리라. 또 다른 한 병은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형을 위한 술상을 차리고 마주 앉아 나눌 것이다.

우리는 먼저 간 사람들의 선물을 잊고 살고 있다. 돈보다, 권력보다, 명예보다 더 소중한 삶을 살게 하는 생명이 담겨 있는 선물을.

무심코 지나가는 길거리에 핀 꽃송이 하나에, 세월이 묻어있는 문고리에, 늘 가족과 함께하는 테이블위에 먼저간이가 전하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선물이 깃들어 있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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